[천자칼럼] 태평양도서국
남태평양 사모아제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아메리칸사모아는 과거 한국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였다. 파고파고 항(港)엔 한국 원양어선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이 섬에는 한국인 선원들의 묘비가 있다. 1960~1970년대 참치잡이 배를 타고 나왔던 사람들이다.

원양어업계는 한국의 첫 원양선을 1958년 1월 부산에서 출항한 제2, 3 지남호로 친다. 앞서 제1 지남호가 인도양까지 시범 조업을 다녀오긴 했지만, 뱃길로 약 9000㎞나 되는 아메리칸사모아로 향한 제2, 3 지남호가 ‘최초’라는 것이다. 변변한 수출품이 없던 시절, 달러를 벌어들일 원양선 출항은 국가적 관심사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제1 지남호가 잡아 온 거대한 청새치를 경무대 뜰에서 직접 살펴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호주·뉴질랜드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메리칸사모아에 들러 “희망이 있는 곳에 민족의 항로가 열린다”며 선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14개 태평양도서국(태도국) 중에는 사모아 외에도 우리와 인연이 있는 나라가 더 있다. 수십 개 섬으로 이뤄진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 등 일부 주에선 2012년부터 한글을 공식 표기문자로 채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화제가 됐다. 사용 언어가 70여 개에 달하는데도 표기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등이 한글 교과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수업을 했다.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많던 피지는 태도국 중 유일하게 대한항공이 취항해 2019년까지 직항노선을 운행했던 나라다.

태도국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지만 중국이 솔로몬제도와 2021년 안보 협정을 체결한 이후 미·중 경쟁이 격해지고 있다. 중국은 2018년 시진핑 주석의 파푸아뉴기니 방문 때 ‘중·태도국 정상회의’를 열었고, 미국은 지난해 9월 워싱턴DC로 이들 정상을 초청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파푸아뉴기니 방문도 예정돼 있다.

우리 정부도 태도국과 호주·뉴질랜드, 프랑스 자치령인 뉴칼레도니아·프렌치 폴리네시아 등 18개국 정상급 인사들을 초청해 이달 말 ‘한·태도국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인도·태평양 외교전략을 발표한 한국으로선 외교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우군을 확보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류시훈 논설위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