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김관진의 귀환
“그의 매서운 눈빛만 보고 ‘바로 이 사람이 적임자’라고 직감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김관진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면접했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장관으로 취임한 뒤 장병들에게 보낸 ‘지휘서신 1호’에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썼다. 노량해전 전날 밤 이순신 장군이 올린 기도다.

김 전 장관의 지휘 모토는 강군(强軍)과 원칙 대응이다.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린다는 ‘침과대적(枕戈待敵)’의 자세로 복무할 것을 부하들에게 누누이 강조했다. “북한 도발 시 쏠까 말까 묻지 말고 선(先)조치하고 후(後)보고하라. 언제까지? 적이 굴복할 때까지” “도발 원점과 지휘 세력을 원점 정밀 타격해 완전히 분쇄해 버려야 한다”는 지시도 했다. 장관 시절 집무실 벽에 김정은과 북한군 수뇌의 사진을 걸어뒀다. “이 시간에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항상 고민하고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합참의장, 일선 군 지휘관 시절에도 북한의 상대 지휘관 사진을 걸어두고 선제적 대책을 강구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은 김 전 장관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북한군은 그의 사진을 타깃에 매달고 조준사격을 했다. 총탄 구멍으로 도배한 그의 얼굴이 노동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2011년엔 북한의 ‘김관진 암살조’가 국내에 잠입했다는 설이 돌아 특별보호 조치가 가동되기도 했다. 그의 대북 원칙적 대응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때도 발휘됐다. 북한이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을 했을 때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강경 대응을 한 끝에 북한의 사과를 받아냈다. 북한 도발이 뜸해지면서 ‘김관진 효과’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군 사이버사 댓글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뒤 수갑을 찬 채 포승줄에 묶여 검찰에 출두하는 그의 사진을 보고 안타까워한 군인이 많았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이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급 위원으로 내정되면서 6년 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위원장이 대통령이어서 김 전 장관이 국방혁신 작업을 이끌게 됐다. 북한이 다시 겁을 먹고 도발을 엄두 내지 못할 정도의 강군을 만들기를 바란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