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송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E-pit’ 충전소 /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송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E-pit’ 충전소 /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SK네트웍스는 최근 EV100 가입을 선언하며 2030년까지 모든 업무용 차량을 전기차와 수소차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EV100은 영국 비영리기구 더클라이밋그룹이 발족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로, 2030년까지 보유 또는 임차한 3.5톤 이하 차량을 100% 무공해차(전기차 또는 수소차)로 바꾸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SK네트웍스는 SK렌터카 SK매직 등 자회사 7개와 함께 렌터카를 포함해 20만 대에 달하는 차량을 서서히 바꿔나갈 예정이다. 올 상반기 승용차 위주의 K-EV100(한국형 무공해차 전환 사업)에 가입한 뒤, 글로벌 이니셔티브에도 이름을 올려 탄소중립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224개 기업 143만 대 전환

EV100과 K-EV100에 참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차량을 무공해 차량으로 바꿔 온실가스 저감에 기여하겠다는 것이 캠페인에 참여한 기업의 공통된 설명이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차량을 친환경으로 바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법인차=전기차’ 시대가 올해부터 열리는 셈이다. 더클라이밋그룹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 딜로이트, 지멘스, 테스코, PG&E, HP 등이 EV100에 가입해 친환경 차량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차량 대수는 기업별로 200대부터 20만 대까지 다양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11월까지 K-EV100에 가입한 기업은 약 224곳이다. 이들 기업이 현재 보유 또는 임차 중인 차량은 약 109만 대이며, 2030년까지 143만 대의 차량을 전기차 및 수소차로 전환할 예정이다. 가입하겠다고 밝히는 기업이 늘어나면 이 숫자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에서 팔린 신차가 187만여 대임을 감안하면 무시하기 힘든 숫자다. 무공해차 전환의 시작 시점은 올해부터다. 이들 기업은 연내에 내연기관차 3만 대를 처분하고 무공해차 1만6000대가량을 구매하거나 임차할 예정이다.

K-EV100에 가입하겠다고 발표한 기업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하다. 제조업에선 삼성전자, LG전자를 포함해 SK이노베이션, LG에너지솔루션, 현대자동차·기아, 포스코, 현대제철, 한화솔루션, 삼성디스플레이, 롯데케미칼 등 한국의 대표 기업 31곳이 가입했다. 금융업은 9곳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내외 인지도가 높고 각 업계를 대표하는 제조·금융 기업이 참여해 무공해차 전환 운동이 모든 업종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숫자로만 보면 중국발(發) 요소수 부족 사태를 겪은 국내 운수·물류업체들이 134곳으로 가장 많다. 이들 업체가 요소수를 구하지 못해 운행을 중단하는 등 ‘홍역’을 겪은 디젤엔진 상용차 대신 친환경 버스와 트럭을 택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운수·물류업은 도심 등 생활권 가까이에서 운행되고 주행거리가 길어 친환경차로 전환했을 때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요소수 부족 사태 이후 디젤엔진 차량 구매를 꺼리는 기업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렌트·리스업은 37곳 가입했다. 이들이 보유한 차량은 전국의 렌트·리스 차량 중 90% 이상이다. 법인차에 이어 ‘렌터카=전기차’라는 공식이 앞으로는 자연스러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K-EV100 참여 기업이 전기차 인프라 확대의 선도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업무용 차량 운영을 위해서라도 사옥 곳곳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설치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K-EV100에 가입한 렌트·리스업 37개 기업은 전기차 렌트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곳곳에 인프라 신설에 나서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한국은 대도시 인구밀도가 높아 빌딩, 아파트 등 공용 주차장의 충전 인프라 확충이 전기차 확대의 선결 조건”이라며 “K-EV100은 충전 공간 확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급속충전기 무상 설치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EV100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아직 충전기가 보편화되지 않은 만큼 충전 편의성을 높여 고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정부도 충전 인프라 확보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 7월 22일 한국경제신문 특별기고를 통해 “충전 수요가 높은 차고지, 직장 등에 2025년까지 전기차 충전기 50만 기를 구축하겠다”며 “수소 충전소도 전국 어디서든 30분 내 도달하도록 450기 이상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기차를 구매하는 법인에 대한 특화 서비스인 EV충전솔루션을 운영 중이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업체 에스트래픽과 제휴해 전기차를 구매하는 법인 고객에게 급속(100kW)·완속(7kW)충전기를 무상으로 설치해주고 약정 기간 동안 무료로 대여해준다. 관리 및 충전 비용 부담을 줄여 전기차 판매를 확대하겠다는 포석이다.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중 G80은 법인 구매 비율이 62%에 달한다.

현대차는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전기차 아이오닉 5, EV6 등과 수소차 넥쏘를 택시용으로 보급하고 있다. 서울시, 개인택시연합회, 법인택시연합회, SK에너지와 업무협약을 맺고 올해 서울시 630대를 포함해 총 900대의 전기 택시를 보급할 계획이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아이오닉 5 택시는 이 같은 사업의 일환으로 공급됐다. 환경부는 공급 여건과 수요 조사를 바탕으로 2022년에는 누적 2만 대, 2025년에는 10만 대의 친환경 택시를 공급할 계획이다.

렌터카업계는 법인 차량의 장기 렌터카 이용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전기차 매입량을 늘리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SK렌터카다. SK렌터카는 K-EV100 수요를 잡기 위해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개인과 법인 고객들이 충전카드 하나로 전국의 충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충전기 사업자별로 카드를 여러 개 준비해야 했다. SK렌터카 관계자는 “기업들은 아이오닉 5, EV6를 주로 빌리고 공공기관은 니로, 코나 위주로 쓴다”며 “충전 편의성 문제가 해결되면 시장이 급속도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한국경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