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각 상임위원회가 요구한 내년도 예산 증액 규모가 1700여건에 무려 11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해 증액 요구액(10조9000억원)을 6000억원이나 뛰어넘은 수치다. 철도 파업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데다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도 이미 넘겼지만 전혀 아랑곳 않는 정치권 특유의 뻔뻔한 내몫 챙기기가 예외 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증액 요구 규모가 유난히 큰 것은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무리한 지역 사업 끼어들기가 급증한 탓이다. 지역 예산과 관련성이 높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증액 요구가 2조2259억원으로 가장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밖에 보건복지위(1조7695억원)와 교육문화위(1조5503억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1조8403억원)의 증액 요구 중 대부분이 선심성 지방선거용이다.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상임위 외에 예산결산특위 차원의 증액 요구만도 추가로 수조원에 이를 것이 거의 확실하다. 반면 지난주 마무리된 예산안 삭감 심사에서 여야는 불과 1조4000억원을 깎는 데 그쳤다. 심사가 보류된 120여개 사업에서 추가로 삭감하더라도 최대 3조원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증액 규모가 삭감 범위를 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액 사업을 둘러싸고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게 뻔하다. 여야가 오는 30일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지만 그대로 지켜질 지는 두고볼 일이다. 설사 연내 처리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과 온갖 ‘쪽지’에 떠밀린 정치적 타협으로 예산은 또 누더기다.

철도 파업에 온갖 괴담까지 나돌아 어수선한 연말이다. 갈등의 조정이 정치의 기능이라지만 우리 정치는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사태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파업문제에 쏠린 틈을 타 천문학적인 민원 예산을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겠다는 정치인들이 대한민국 문제의 본질이다. 정치는 기어이 나라를 말아먹을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