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의 '씨름도'를 보면 힘을 겨루는 두 사람의 표정이 아주 대조적이다. 한 사람은 용을 쓰며 들어 올리려 하고,다른 한 사람은 발이 들려 곧 넘어질 듯하다. 빙 둘러 앉은 구경꾼들은 그 표정만으로도 누구 편인지 금세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씨름판의 이 풍속화에서는 당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이 물씬 감지된다.

씨름은 서민들만 즐겼던 게 아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충숙왕이 궁중에서 씨름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조선왕조실록에는 궁중에서 씨름을 즐겼다는 내용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장수들도 짬짬이 병사들과 어울려 씨름을 하며 잠시나마 전쟁의 고통을 달랬다고 한다.

우리 고유의 스포츠인 씨름의 역사는 깊다. 고구려의 고분에 벌써 씨름벽화가 나온다. '씨름'이라는 말 자체도 순전히 우리말로 '시루다'가 어원이라고 하는데 '두 사람이 힘을 겨룬다'는 뜻이다. 이 씨름은 조선시대에 민속놀이로 정착되면서 단오,백중,한가위의 대표적인 민중놀이가 됐다.

강변의 모래사장이나 장터,동네 한가운데서 씨름이 벌어지면 인근의 힘깨나 쓴다는 장사들이 다 모여 힘을 겨뤘다. 좀 크다 싶은 씨름판의 부상은 황소였는데,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라는 의미였을 게다.

이런 씨름이 유네스코(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부산 세계사회체육대회 지정위원회는 오는 28일 부산 범어사에서 회의를 갖고 씨름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부산선언문'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의 민속춤,러시아의 전통 격투기인 삼보도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세시풍속의 하나로 즐겼던 씨름이 프로팀까지 만들어져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나 그 열기는 예전만 못하다. 협회의 갈등과 취약한 재정 등으로 프로팀들이 해체위기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씨름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한가위를 맞아 온 동네 사람들이 어우러져 한마당 축제를 벌일 씨름판이 기다려진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