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1백일을 맞는 날이다. 무척 오래 된 것 같은데 그렇게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1년은 외국의 10년'이라고들 했지만,정말 숱한 일이 있었고 길게 느껴지는 1백일이었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5년 임기중 18분의 1이 지난 데 불과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평점을 매기는 것은 성급한 일이고 또 잘못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1백일동안 나라 경제가 누가 보더라도 잘 나가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원인이 경기순환 사이클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우려는 당연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권 초기 1백일의 중요성은 특별하다.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쪽으로 평가가 모아지고 있는 YS·DJ만 해도 취임 1백일 시점에서는 잘한다는 평가가 압도적이었는데,노 대통령의 경우 그렇지도 못하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정권의 성패를 가름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초기 1백일을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난 1백일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에 대한 신뢰성'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철도·화물연대 파업,교육행정 정보시스템(NEIS) 파동 등 어느것 하나 책임 있는 당국자의 말이 지켜진게 없다. 이러고서도 정부를 믿고 따르기를 기대한다면,그것은 한마디로 비논리적이다. '법과 원칙이 실종된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정부관계자들은 지나치다며 불쾌해할지 모르겠으나 굴절과 반전을 되풀이한 문제의 사안 처리과정은 그렇게밖에 달리 표현하기도 어렵다. 그 중 어느것 하나만이라도 책임 있는 당국자의 말이 지켜졌다면 상황 전개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라는 민간경제계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이달 중에 집중적으로 예고돼 있는 숱한 파업도 따지고 보면 정부에서 원인행위를 제공한 측면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경제정책은 본질적으로 갈등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득을 보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이 있게 마련이기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선택은 신중하고 종합적인 시각이 바탕이 돼야 하고 일단 내려지면 분명하고 확실해야 할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지난 1백일간 과연 그러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정권때 내려진 것이지만 경부고속철도노선,철도·전력민영화 등 주요 국책사업에 대한 '선택'이 너무도 쉽게 바뀌었기 때문에 또다른 문제를 부르는 꼴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0년 이상 계속된 새만금간척사업이 이 정부 들어 왜 또 쟁점이 되고 있는지,따져봐야 한다. 집단행동에 온정적이고 인기영합적인 것처럼 비쳤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진다면 참여정부의 남은 나날도 문제일 수밖에 없다. 경제부처의 지난 1백일간은 따지고 보면 한마디로 딱했다. 경기가 끝없이 내림세로 치닫는 등 경제위기감이 고조되는 국면이었지만 대응할 수단이 전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돈이 풀릴대로 풀려 있지만 이것이 투자로 연결되지는 않는 상황,그래서 금리 등 경제부처 고유의 정책수단이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까닭도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노 대통령이 '국정의 중심이 경제안정'이라며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힌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경기 등 당면 현안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시장시스템을 유럽형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형으로 할 것인가, 복지부문지출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은 대통령이 해야 한다"는 발언은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경제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관념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듯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 사회당들이 하나같이 우(右)선회를 분명히하고 있는 여건인데,우리 정치권에서만 아직도 관념적이고 공허한 분배와 형평의 구호에 집착한다면 문제다. 독일 사민당이 해고규정 완화,실업수당 삭감 등을 내용으로하는 아젠다 2010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그런 점에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실패로 끝난 유럽 사회당들의 실험에 대한 미련을 분명히 떨쳐버려야 한다. 지난 1백일 동안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노조에 경도된 노동정책이 나오고,그런 것들이 지나치게 기대를 부풀려 숱한 문제를 낳은 것 아닌지,냉정히 되돌아봐야 한다. 고용유지가 사회안정의 기본이라면 지금이야말로 기업하기 좋게 해야 할 때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