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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 밖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 TKI 이야기

    24년 전인 1996년에 인도네시아 람뿡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근로자를 동네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다른 친구들도 소개받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이들이 어떤 사정으로 여기까지 일하러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근로자는 아니었다. 당시에 있던 산업연수생 제도를 활용하여 한국으로 왔으니 연수생이라 해야 맞다. 말이 연수생이지 실제로는 근로자인데 기본급으로 한 달에 30만원 정도를 받았고, 잔업이나 특근을 하면 50만원 정도까지도 벌 수 있었던 모양이다. 24년 전이었으니 이것도 꽤 괜찮은 수입이라 하겠다. 하루는 이 람뿡 친구가 자기가 산업연수생으로 오기 전에 4주 짜리 군사 훈련 비슷한 걸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과연 이 친구와 다른 친구들이 국방색 상의와 얼룩무늬 군복같은 걸 입고 뛰는 사진, 짧은 머리를 하고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영락없는 군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는 권위주의적인 수하르토 정권하(下)였으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산업연수생 후보생을 뽑아서 타국의 힘든 생활을 견딜 수 있도록 체력과 정신력 함양 교육까지 시켜서 보냈다는 얘기이다. 연수생 중에는 대졸자도 많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사람도 있었다. 개중에는 연수생 신분을 버리고 불법으로 한국에 체류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월 백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고 들었다. 람뿡에서 온 이 인도네시아 친구는 한국에 5년간 있다가 돌아갔다. 한국에서 모은 돈으로 고향에 조그마한 점포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나라 밖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인력을 TKI(Tenaga Kerja Indonesia,

  • 빤짜실라의 나라 인도네시아, 괜찮은 건가?

    인도네시아에서 매년 6월 1일은 ‘빤짜실라(Pancasila)’의 날이다. 원래는 국경일이 아니었는데 2016년 대통령령으로 이 날을 국경일로 지켜 기념하기로 결정하였다. (2017년부터 시행) ‘빤짜실라(Pancasila)’는 인도네시아 건국이념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자바 고어로 ‘빤짜’는 숫자 5, ‘실라’는 원칙을 의미한다. 그래서 빤짜실라는 5개의 원칙이라는 뜻이며, 전능한 신에 대한 믿음, 인간애, 인도네시아의 하나됨, 합의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 사회정의를 포함한다. 흔히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에 300년 식민지배를 받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네덜란드 지배 이전에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는 없었다. 오히려 네덜란드 식민지배 시절에 국내외에서 근대적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싹텄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지식인들은 인도네시아가 젊은 나라라고 말한다. 인도네시아는 그 이전의 문화적 유산은 계승하면서도 여러 민족과 문화, 종교를 아우르는 새롭고 젊은 국가로 태어났다. 민족도, 문화도, 언어도, 종교도, 이념도 다 다른 사람들을 품고 이전에 없던 국가를 형성해야 했으니 인도네시아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합의가 쉬울 리 없다. 1945년 독립선언을 하기 이전에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인도네시아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빤짜실라는 이 논의에 대한 초대대통령 수카르노의 제안을 기반으로 제정되었다. 수카르노는 아직 인도네시아가 최종적인 독립을 이루기도 전인 1945년 6월 1일 독립을 준비하는 위원회에 빤짜실라의 초안을 제출하였다. 감동적인 연설과 함께. ‘빤짜실라의 날’

  •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인니 대명절 이둘 피트리/르바란

    무슬림은 한 달간의 라마단 금식을 마친 후 이슬람력 10월인 샤왈(syawal)월 첫날을 금식을 마친 것을 기념하는 명절로 지킨다. 명절이라는 뜻의 에이드(Eid), 금식을 마쳤다는 뜻의 피트르(fitr)를 합한 에이둘 피트르(Eid ul-fitr)는 희생제물을 잡는 명절인 에이둘 아드하와 함께 이슬람 2대 명절 중 하나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둘 피트리(Idul Fitri), 또는 르바란(Lebaran)이라고 더 많이 부르는 이 때 무슬림들은 명절음식을 하고, 고향을 찾아가고 가족과 친척을 방문한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말레이시아에서도 명절을 보내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말레이시아에 살 때 보니 이 명절 분위기는 공식 휴일을 지나도 계속되어 거의 한 달 가까이 가는 것 같았다. 쇼핑몰에서도 라디오에서도 2~3주가 넘도록 명절 음악이 흘러 나온다. 인터넷을 설치하려고 기사에게 연락하니 아직 고향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며 2주 뒤에나 돌아온다고 한 적도 있다. 공식 휴일이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도 정부기관이나 학교, 각 단체들은 명절(하리 라야, hari raya) 오픈 하우스를 한다. 도대체 이 명절은 공식적으로 언제 끝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나만 궁금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학교에서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다른 무슬림 친구들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선 이 에이둘 피트르 명절이 왜 이렇게 길고 성대하냐며 신기해 하는 것이었다. 약간 놀라기도 했다. 그 전까지 이슬람에서 에이둘 피트르가 가장 큰 명절이라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을 배웠고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명절을 보내는지 알아 볼 기회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들

  • 인도네시아 인구 이야기

    20년 전쯤 인도네시아에 대해 처음 알아갈 때 인도네시아 인구가 약 2억명 정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동남아시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인구가 네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현재 인구는 2억 7천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성장률은 연 1%가 조금 넘어 지금도 매 4년 마다 약 천만명씩 사람수가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 기준으로...

  • 자카르타의 라마단 풍경, 그리고 단상

    무슬림은 1년에 한 번 이슬람력으로 아홉째 달인 라마단달(月)에 금식을 한다. 금식은 이슬람 신앙의 5대 기둥 중 하나이며 금식월에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음식과 물, 성관계가 금지된다. 이슬람력은 서력보다 열흘 이상 짧기 때문에 해마다 라마단 금식월은 그만큼 당겨진다. 올해는 4월 24일부터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금식월(月)이던 어느 날 저녁식사를 하러 쇼핑몰 푸드코트를 찾았다. 그 날도 푸드코트는 하루의 금식을 ...

  • '포텐은 언제 터지나?' 이슬람금융 in 인도네시아

    이슬람금융과 인도네시아는 만년 유망주이다.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얘기는 한참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흔한 말로 ‘포텐셜’이 터지는 날은 좀처럼 오지 않고 있다. 사실 그 날이 언제일지 전망하기도 쉽지 않다. 이들의 잠재력을 믿고 자원과 시간을 투자하고 희망고문에 시달리는 기관이나 개인들도 많을 것이다. 유망하다고는 하는데 잘 안 터진다. 하물며 이 둘을 결합한 ‘인도네시아의 이슬람금융’ 전망은 어떨까? 희망고문이 두 배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금융을 공부하던 즈음인 2009년~2012년 4년간 세계 이슬람금융 부문 성장률은 매년 각각 26%, 10%, 19%, 20%를 기록하였다. (GIFR 2019, Global Islamic Finance Report, Cambridge Institute of Islamic Finance) 세계인구의 1/4 가량이 무슬림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일반금융과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질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이 많았다. 유가도 높았고 중동이나 동남아 지역 프로젝트도 많았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친구들도 졸업하고 학위만 받으면 불러주는 데가 많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이슬람금융 분야의 성장률은 6.58%이다. 2013년 11.16%의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에는 연간 기준 두자리수의 성장률을 기록한 적이 없으며 그마저도 하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슬람금융의 성장세가 주춤한 이유로유가하락이나 주요국 거시경제지표 악화, 환율 등 요인이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5년 연속 한자리수 성장을 하며 성장률도 하락하는 데는 뭔가 구조적인 요인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산업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더 이상 초기의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마저

  •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우먼파워

    먼저 인도네시아의 이웃나라인 말레이시아 우먼파워 이야기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공부를 하던 2011년 어느 날이다.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재미있는 주제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남학생의 대학진학률이 여학생보다 많이 떨어져서 남학생이 대학을 많이 가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뛰어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2018년 영국 사설기관(UCAS)이 조...

  • 인도네시아의 매운 맛

    회사에서 직원들과 같은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의 일이다.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한 여직원이 음식 하나를 가리키며 점원에게 '이거 맵나요?' 하고 묻는다. '매운 걸 잘 못 먹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별로 맵지 않다'는 점원의 대답에 이 직원은 계속 다른 메뉴들을 가리키면서 매운지를 묻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운 음식을 거르려는 것이 아니고 맵지 않은 음식을 거르려는 시도였다. '매워야 먹는다'는 것이다. 매운 음식을 좋...

  • 위험(리스크)에 대처하는 인니 사업가의 자세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대출업무를 하던 2015년 당시 우리 회사가 제시하던 미 달러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대출 금리 차이는 약 6~7%p 정도였다. 글로벌 저금리 기조 속에 달러금리는 낮고, 루피아 대출금리는 연 10%가 넘었던 것이다. 나중에 금리 차이는 좀 좁혀지긴 했지만 루피아화 대비 달러화 명목 대출금리가 눈에 띄게 낮은 현상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와중에 한국계 기업들과 현지기업들이 대출 의사결정에서 금리와 환율을 대하는 자세가 달...

  • 인도네시아 : 드라마 코리아, 노우(know) 코리아? 바이(buy) 코리아?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던 어느 날, 한국드라마 팬인 마케팅 매니저가 이렇게 묻는다. '부장님, 한국 드라마에 가끔 나오는 검은 국수, 그거 뭐예요?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그거,, ' 검은 국수라.. 드라마에서 검은 국수를 자주 보았는데 무엇인지 몰라서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검은 국수가 “짜장면”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국식 중국음식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짜장면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덧붙였다. 어릴 때 졸업식...

  • 인도네시아 퇴직금 이야기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일할 때 회사에 15년 정도 근무한 직원의 퇴직 절차를 처리한 적이 있다. 그 전부터 여러 기업들로부터 인도네시아 퇴직금 액수가 매우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직접 관련 규정을 찾아보며 정해진 계산법과 절차에 따라 지급해 보게 된 것이다. 15년을 조금 넘게 일했다는 이 직원은 약 27.6개월분의 급여를 받아서 퇴직하였다. 아무래도 금융회사는 제조기업보다는 급여 수준이 센 편이라 퇴직금 액수도 상당했다. ...

  • 인도네시아의 스포츠 입국(立國),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인연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신태용 감독이 선임되었다. 인도네시아 언론들도 신태용 감독의 선수시절 경력과 함께 지도자로서의 성과를 짚으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했지만 독일을 2:0으로 격침시킨 팀을 이끈 지도자라는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전만 해도 우리 대표팀이 킹스컵이니 메르데카컵이니, 코리아컵이니 하는 지역 대회에서 인도네시아 대표팀과 경기할 기회가 제법 많았던...

  • '메리 크리스마스' 사라져 가는 인니 성탄절

    인도네시아에서 맞았던 한 성탄절에 있었던 일이다. 고객과 친구, 지인들에게 성탄을 복되게 보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중에는 무슬림 친구와 지인들도 있었다.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명절이 되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명절을 축하해 주고 때로는 집을 방문하여 음식을 나누거나 이웃에 선물 꾸러미 등을 나누어 주기도 하는 전통이 있다. 무슬림이 아닌 필자도 이슬람 명절에 초대되어 명절 음식을 나누며 교제한...

  • 인도네시아 최저임금 이야기

    11월 발표된 자카르타 지역 2020년 최저임금은 월 4,267,349 루피아이다. (한화 약 35만 5천원) 이는 2019년의 약 390만 루피아에서 8.51%가 오른 수치이다. 섬유와 전자, 자동차 부품 등 생산시설이 모여있는 인근 지역 최저임금 수준을 보면 까라왕 Rp 4,594,324(약 38만 5천원), 버까시(시) Rp 4,589,708(약 38만 5천원), 뿌르와카르타 Rp 4,039,067(약 33만 8천원), 수까부미 Rp 3,...

  • 인도네시아의 먹고 사는 문제

    처음 인도네시아에 대해 알아가던 20여년 전만 해도 인도네시아가 다른 건 몰라도 먹고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겨울이 없으니 벼농사도 3모작은 할 거고, 나무에 열리는 과일만 따 먹어도 굶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식량자급을 이루는 일이 큰 숙제였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나중에 보니 인도네시아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이었다. 기후만 놓고 보면 ...

  • 인력구조 : 튼튼한 허리가 아쉬운 인니, 읽어야 산다.

    최근 파키스탄 출장에서 개도국 공공부문 인력과 일을 많이 해 본 국내 전력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해당 분야에서 그 분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개도국 기관도 리더는 식견과 능력이 뛰어난데, 실무진으로 갈수록 능력치가 떨어져 좋은 전략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똑같이 느꼈던 터라 더 크게 공감이 되었다. 사실 지금과 같은 경제구조에서 인도네시아의 인적자원은 질과 양의 측면에서 나쁘지 않...

  • 아프면 비행기 타는 인도네시아 인들, 왜 그럴까?

    작년 발생한 중부 술라웨시 지역 쓰나미 때 헌신적인 대응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재난관리위원회 홍보책임자가 지난 7월 암투병 끝에 생을 마감하였다.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안타까워하며 그를 추모하였다. 그런데 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특이한 점이 보인다. 사망 장소가 중국 광저우의 한 병원이다. 인도네시아 공무원인 그가 왜 중국 대도시의 병원에서 생을 마쳤을까? 지난 6월에는 유력 정치가의 부인이 싱가포르 한 병원에서 투병 끝에 사망한 일도 있...

  • 인도네시아에는 국영 전당포가 있다고?

    인도네시아 소액금융시장이 뜨겁다. 핀테크나 P2P 금융에 대한 기사가 경제신문에 연일 오르내린다.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건전성과 보안문제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전통적 소액금융수단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금융구조와 기술로 이들과 경쟁하는 회사가 있다. 인도네시아 국영전당회사(PT. Pegadaian)가 그것이다. 인도네시아에는 국영전당포가 있다. 자카르타 시내를 다니다 보면 군데군데 녹색원으로 된 로고와 함께 ...

  • 연무 두고 갈등 빚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14년 전인 2005년 말레이반도 서해안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주요도시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내리니 짙은 안개가 껴 있었다. 타는 냄새도 났다. 책에서만 읽었던 런던스모그 같은 용어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말레이시아 공기가 원래 이런 것인지,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처럼 미세먼지나 대기질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을 때였기 때문이다. 남쪽인 말라카로 내려오니 공기질은 더 안 좋아졌다. 타는 냄새도 심해졌다. 아침에 숙소에서 일어나 문 앞에 와 있는 신문을 보고서야 이 연무의 원인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방에서 발생한 산불임을 알 수 있었다. 공기질이 안 좋아 학교들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도 보이고, 노약자나 민감군들은 바깥활동에 주의하라는 권고들도 실려 있었다. 300이니 600이니 공기질을 나타내는 숫자들도 도시 별로 소개되었다. 그 수치가 공기가 얼마나 안 좋다는 것인지도 전혀 감이 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신문 1면에 크게 써 있던 ‘언제까지 우리가 이 이웃을 참야줘야 하는가?’ 라는 제목이다.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이 여러 이유로 갈등을 빚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이전부터 영토분쟁, 말레이시아 內 인도네시아 근로자의 처우문제 등 여러 이슈를 놓고 티격태격 해왔다. 지금은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인도네시아령은 칼리만탄)에서 발생하는 연무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이 상당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연례행사가 된 연무는 주로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 중부와 남부, 그리고 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섬에서 발생하는 산불 때문에 일어난다.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