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신태용 감독이 선임되었다. 인도네시아 언론들도 신태용 감독의 선수시절 경력과 함께 지도자로서의 성과를 짚으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했지만 독일을 2:0으로 격침시킨 팀을 이끈 지도자라는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전만 해도 우리 대표팀이 킹스컵이니 메르데카컵이니, 코리아컵이니 하는 지역 대회에서 인도네시아 대표팀과 경기할 기회가 제법 많았던 것 같다. 상대전적이야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앞서지만(35승 4무 4패) 그래도 꽤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월드컵에 매번 출전하게 되며 지역대회 출전을 하지 않고, 또 기량 차이가 벌어지게 되면서 인도네시아 대표팀과 마주칠 기회는 많이 사라졌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인도네시아와의 스포츠 교류에 대한 기억 중 하나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우리나라와의 스포츠 인연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단연 배드민턴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만나면 박주봉, 김문수, 방수현 선수의 이름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박주봉-김문수 복식조는 1992년 배드민턴이 처음 정식종목이 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인도네시아의 하르토노-구나완 조를 이기고 금메달을 걸었다. 여자 단식 방수현 선수는 더 극적이다. 92년 바르셀로나에서는 결승에서 인도네시아 수시 수산티 선수에게 져 은메달을 땄는데, 4년 뒤 애틀랜타에서는 리턴매치에서 수산티 선수를 준결승에서 이기고 결국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수시 수산티 선수는 동메달 수상)

인도네시아가 지금까지 하계 올림픽에서 딴 메달 32개 중 19개가 배드민턴 한 종목에서 나왔다. 금메달은 7개 모두가 배드민턴에서만 나왔다. 그러니 배드민턴 종목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는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데, 그 길목마다 한국 선수들과 마주치며 인상적인 기억을 남겼던 것이다. 아마 박주봉 선수나 방수현 선수는 한국에서보다 인도네시아에서 더 유명할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대화 중에 두 선수의 이름이 언급되는 경우가 가끔 있을 정도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배드민턴 강국이긴 하지만 이전처럼 기억에 남을만한 양국 선수간 경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2012년 런던올림픽을 제외하고는 매 대회에서 배드민턴 종목에서 최소한 1개의 금메달은 수확했지만 성적이 예전 같지는 같다. 배드민턴이라는 종목이 갖는 위상이 남다른 인도네시아에서는 ‘예전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자주 나온다.
우리 나라에서는 요즘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메달 순위를 통해 국력을 가늠하고, 스포츠를 통해 국위를 선양한다는 개념이 옛날보다는 많이 약해졌다. 인도네시아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인도네시아는 2018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GNI)이 3,840 달러로, 세계은행에서 하위중소득국과 상위중소득국을 가르는 기준인 3,995 달러에 거의 가까워졌다. 상위중소득국 편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빈곤에서 벗어나 중진국으로 도약하려는 이 시기에 스포츠를 통해 시민들이 일체감을 가지고 우리도 세계에서 통한다는 자신감을 획득하는 경험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등을 거치며 가졌던 바로 그런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열렸던 자카르타-빨렘방 아시안게임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사실 요즘 아시안게임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선뜻 개최하려는 곳이 많지 않다. 2018년 아시안게임도 베트남 하노이가 유치하여 예산을 이유로 반납한 것을 인도네시아가 재유치한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이 아시아 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자국의 저력을 국내외에 보여줄 뿐 아니라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고 자신감을 높이는 용도로 활용하였다. 공무원이나 군경, 관계자 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성적으로도 보여줬다. 인도네시아는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 7위를 한 이후 메달집계에서 10위 안에 들어선 적이 없다. 최근 2번의 대회에서는 각각 금메달 4개를 수확하는데 그쳤다. 이번 대회에서는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였는데, 금메달 31개, 총 메달수 98개로 4위를 기록하여 목표를 초과달성 하였다. 그 중 14개의 금메달은 인도네시아가 대회를 개최하며 정식종목이 된 전통무술 픈짝 실랏(Pencak Silat)에서 거둔 것이며 그 외에도 개최국으로써의 이점이 상당 부분 작용하였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유가 어떠하였든 간에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평가와 함께 성적까지 좋으니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었다. 많은 예산을 들여 다른 데서 개최하기 꺼려하는 대회를 치러낸 보상을 받은 셈이다.

이 여세를 몰아 조코위 대통령은 2032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유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진지하다. 자카르타는 호주의 퀸즈랜드와 함께 이미 2032년 유치신청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올해 있을 도쿄 올림픽에서는 본격적으로 유치전을 벌인다는 계획인데, 중국,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말 자카르타가 2032년 올림픽 개최지가 될 수 있을지, 우리가 1988년에 했던 경험을 인도네시아도 하게 될 수 있을지 주목해 볼 만 하다. 다만, 우리나라도 2032년 올림픽 개최 의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어 변수가 될 것 같다.
다시 축구 얘기다. 단일 종목으로 축구만큼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주고 자부심을 고취시키는데 효과적인 종목은 없다. 우리는 2002년에 경험했고, 베트남은 지금 경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빠른 축구를 하지만 체격이 작고, 체력이 약하다는 약점이 지적되곤 한다.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면 자신만의 철학과 방식으로 인도네시아 축구 체질 개선에 나설 것이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우리 대표팀에, 지금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에 했던 것처럼 말이다. 신 감독은 부임하면서 주요 코칭 스태프에 한국인 지도자들을 배치하였다. 감독 개인이 아니라 한국 축구 시스템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결국 한국 축구를 어떻게 인도네시아 토양에 접목시키느냐가 성공의 관건이겠지만, 신태용 감독이 성공하면 인도네시아는 감독 개인 뿐 아니라 한국적 시스템에도 주목하게 될 것이다. 스포츠 한류가 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스포츠 입국(立國)에 우리나라와의 또 하나의 인연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crosus@koreaexi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