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앞 자리에는 할아버지부터 손녀까지 삼대가 모인 가족이 식사를 막 시작하고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푸드코트 여직원이 유니폼을 입고 서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손님들을 위해 예약석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물뚜껑을 열어 목을 축이고,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만 그 직원은 서 있어야 했다.
그 직원이 맡은 일 때문에 금식시간 종료를 알리는 소리에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서 있는 것을 보고, 내 앞자리에 있던 중년 여성이 약간의 물과 음식을 권했다. 그러자 딸인 것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작은 접시에 담긴 달콤한 케잌과 과자를 그 직원에게 건넸다. 이 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며 망설였지만 이내 수줍게 웃으며 이들이 건네주는 물을 받아 마시고 과자를 작게 베어 물었다. 이전에 서로 알지 못했을 이 가족과 젊은 직원은 어느덧 금식을 마무리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가족 같아 보였다. 아름답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 후에도 라마단 때가 되면 항상 이 장면이 떠오른다.
선지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라마단월에 금식을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금식을 하면 죄가 씻어진다고 한다. 하루를 금식할 때마다 까마귀가 태어나서 평생 날 수 있는 거리만큼 지옥불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자 하는 욕구와 성적인 욕구는 삶의 기본적 욕구인데, 이런 욕구를 1년 중 일정한 기간 동안, 또 하루 중 일정한 시간 동안 절제하는 것이 라마단 금식이다. 금식을 하며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기도 하고, 또 주위 사람들의 결핍을 돌아보는 것도 금식의 의미 중 하나이다.
그냥 습관적으로 금식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금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누가 보지 않으면 음식을 먹는 이들도 많다. 그래도 많은 무슬림이 라마단 기간을 자신의 신앙을 갱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금식을 지킨다. 어린 아이들은 금식의 의무가 없지만 아침식사를 거르는 부분 금식을 하거나 어른들과 함께 전일 금식에 참여하며 뿌듯해 하기도 한다. 어른으로 인정받는 기분일 것이다. 한 달간 금식을 해야 하는 금식월이 다가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라마단이 시작되면 무슬림 친구들의 SNS는 ‘마르하반 야 라마단’(안녕, 라마단, 어서와 정도의 의미)이라는 기대의 메시지로, 라마단이 끝날 때에는 ‘잘가, 라마단 내년에 또 만나’ 하는 아쉬움을 담은 메시지로 넘친다. 이런 걸 보면 금식을 억지로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지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금식을 마치는 식사를 제공하면 음식을 주는 사람도 금식을 한 것과 마찬가지의 보상이 있다고 한다. 하루 종일 허기진 후에는 대추야자나 달달한 음료, 간단한 스낵 같은 것들로 속을 달래는 음식을 먹는데, 일몰 기도를 드리러 가는 사원 앞이나 길 가에서 금식을 마치는 음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라마단 금식은 배고픔과의 싸움일 뿐 아니라 피곤함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금식을 하는 여직원들은 점심시간에 탈의실에 자리를 깔고 누워 쉬거나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허기가 지고 힘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피곤함이 더 큰 이유이다. 금식 때는 해가 뜬 이후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에 사후르(sahur)라고 하는 식사를 한다. 사후르를 먹어야 하루의 금식을 견딜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식사이다. 자다가 일어나 뭘 먹고 마시는 것도 피곤한 일이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사후르를 준비하는 것은 아직은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다. 또, 라마단 기간에는 배고픔 끝에 저녁식사를 하게 되므로 평소보다 거한 특식을 준비할 때가 많다. 배고픈 상태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간식거리를 장만하는 것도 대부분 여성의 일이 된다. 라마단 때는 남성들도 피곤하지만 여성들은 더 피곤하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crosus@koreaexi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