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톡톡]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인니 대명절 이둘 피트리/르바란
말레이시아에 살 때 보니 이 명절 분위기는 공식 휴일을 지나도 계속되어 거의 한 달 가까이 가는 것 같았다. 쇼핑몰에서도 라디오에서도 2~3주가 넘도록 명절 음악이 흘러 나온다. 인터넷을 설치하려고 기사에게 연락하니 아직 고향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며 2주 뒤에나 돌아온다고 한 적도 있다. 공식 휴일이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도 정부기관이나 학교, 각 단체들은 명절(하리 라야, hari raya) 오픈 하우스를 한다. 도대체 이 명절은 공식적으로 언제 끝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나만 궁금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학교에서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다른 무슬림 친구들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선 이 에이둘 피트르 명절이 왜 이렇게 길고 성대하냐며 신기해 하는 것이었다. 약간 놀라기도 했다. 그 전까지 이슬람에서 에이둘 피트르가 가장 큰 명절이라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을 배웠고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명절을 보내는지 알아 볼 기회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들어보니 에이둘 피트르를 동남아 무슬림들처럼 성대하게 쇠는 곳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는 희생제(에이둘 아드하, Eid ul-Adha)가 더 중요한 명절인 경우가 많다. 같은 이슬람권이라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라마단 금식 후에 쇠는 이 에이둘 피트르에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톡톡]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인니 대명절 이둘 피트리/르바란](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814410.1.png)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중 욕망을 절제하고 금식을 하면 죄가 씻어진다고 믿는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하루 금식에 칠십년 여행하는 거리만큼 그 얼굴이 지옥불에서 멀어진다거나, 하루 금식에 까마귀가 어려서부터 평생 날 수 있는 거리만큼 지옥불에서 멀어진다는 내용이 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에 나와있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못 미치는 기간 동안 금식을 하였으니 굳이 따지자면 금식을 마치고 맞는 명절인 이둘 피트리 첫날이 죄악에서 가장 멀리 있는 날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둘 피트리에 ‘새로운 시작’ 또는 ‘탄생’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금식을 마쳤다는 뜻의 ‘피트르’의 어원에 ‘시작’이나 ‘탄생’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해석도 볼 수 있다. 금식을 마친 직후에는 무슬림들이 죄에서 깨끗해져 모태에서 나온 아기와 같은 순전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새로운 시작과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향을 찾는 풍습도 내가 태어난 곳, 근원으로 돌아가서 새출발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톡톡]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인니 대명절 이둘 피트리/르바란](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0Q.25814411.1.jpg)
객지에서의 고단했던 삶을 뒤로 하고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가서 음식을 나누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도시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나면 다시 짐을 싸서 일년을 보낼 힘을 얻어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인도네시아에서 이둘 피트리 명절의 의미이다. 안정된 직장이 있는 이들이야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면 되겠지만 직장을 구해야 하거나 더 나은 자리를 찾는 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에 고향에서 만난 가족이나 친구들과 정보를 교환해서 새 자리를 구하기도 한다. 시골에 있던 사람이 명절이 끝나고 가족과 친구들을 따라 도시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둘 피트리가 끝나면 고용인도 새 피고용인을 구하고, 피고용인도 새 자리를 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이둘 피트리 명절은 고향을 찾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오랜 금식을 마친 것을 축하하고 몸과 마음을 새로이 하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번 이둘 피트리 명절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제약으로 경찰이 자카르타를 들고 나는 고속도로 진출입구를 다 지키고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지 방법을 마련하여 길을 나서는 사람들은 있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예년과는 다른 썰렁하고 외로운 이둘 피트리, 르바란 명절이 될 것 같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국수출입은행(crosus@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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