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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 없는 항변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풍경이다 때로는 먹을거리를 때로는 생활필수품들을 주욱 모아서 판다 채소 과일 곡식 별별 것들이 다 모여 있다 육교를 건너가는데 이상한 소리들이 들렸다 가만히 서서 들어보니 늘어선 물건들이 신세 한탄을 하는 소리였다 과일 : 어쩌다가 난 이렇게 됐단다 백화점 냉장케이스에서 우아하게 부잣집 마님 손길을 기다려야 할 팔자인데 곡식: 내 신세도 처량하다 포대에 잘 포장되어 마트에서 우아하게 팔려서 고급 레스토랑...

    • 내 사랑이 아니다

      옛날 화장실은 주로 집안 한쪽 구석에 두었다 뒷간 또는 변소라고 불렀다 뒷간에 가려면 일부러 신발을 찍찍 끌던지 에헴 하고 헛기침이라도 해야 했다 내가 지금 뒷간을 쓰려고 한다는 신호이었다 그러면 뒷간 안에 있던 사람도 부스럭 종이소리를 내든지 헛기침소리를 냈다 이를 기척이라고 했다 요즘 화장실은 기척을 할 필요가 없다 사용중 표시가 없는 화장실은 똑똑 노크를 하면 되고 잠금장치가 잘 되어 있으니 열릴 일도 없고 밖에서도 안...

    • 어느 번데기의 고백

      데기데기데기 뻔데기 몇십 년 전에 듣던 말이다 번데기장수는 뻔! 뻔! 뻔! 한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못다한 말 데기데기데기를 주어섬기다가 드디어 한번이자 마지막으로 뻔데기 한단다 실크 우리말로 비단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만든다 태어나자마자 금지옥엽 시원하고 풍부한 먹이를 마껏 먹은 그 죄 하나로 번데기는 저 열탕 속에서 죽어간다 아마 누에고치를 삶아야지만 실이 잘 풀리나보다 끓인 다음 막대기로 홰 홰 자꾸 저으면 명주...

    • 품는 것은 아픈 것이다

      두 그루가 붙은 것인지 원래 한 그루가 빨리 가지를 친 것인지 참 아리송하다 요 녀석도 아리송한데 아리송보다는 조금 야하다 얼싸안고 부르스를 추고 있다 바위가 먼저 있었고 그 아래에서 자라던 나무가지가 바위를 품고 자랐다는 말인데 바위가 있으면 나무가 피해서 자라는 것이 자연이치인데 이상하다 흔히 말하는 연리지이다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붙었다 무엇인가를 품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가 나를 품는 것도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더구나...

    • 흰민들레 - 당신만 준비가 되신다면

      흰민들레 김종태 당신을 사랑한다고 수없이 속삭여도 당신은 결코 믿지 않겠지요 저를 믿지 않는 한 당신은 저의 진실을 믿지 않을 테니까요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한 말 뒤에는 더 간절한 부르짖음이 있다는 것을 남의 말만 듣는 귀나 보이는 것만 보는 눈이 어찌 알 수 있을까요 귀막고 눈을 다시 떠 보세요 새로움은 언제나 곁에 있어요 당신만 준비가 되신다면 언제라도 어디...

    • 각시붓꽃 - 난쟁이꽃

      각시붓꽃 김종태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시들어야 했던 님의 보랏빛 서러움을 풀고자 갈잎 또는 솔잎을 헤치고 새파란 칼날 갈고 또 갈았다 말로는 벌써 사월이라지만 삼월의 시샘바람은 늙어서도 매서워 아직은 가냘픈 잎새 돋기 이른데 앞서 가는 죄이지 누구는 선구자라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유전인자 빛난 기쁨 그 꽃다운 세상 추운 세상에 빨리 보이고자 님처럼 또 속는 줄 알면서도 그리움과 꿈으로만 빚은 잇꽃빛과 쪽빛이 한...

    • 할미꽃이 아니다

      할미꽃은 꽃이 피면서부터 구부러져 있어서 등이 굽은 우리들의 할머니를 닮았다고 할미꽃이라고 부른다 또다른 이유는 꽃이 지고 씨가 영글 때 씨를 멀리 날아가게 해주는 털이 할머니의 머리카락처럼 하얗게 된다고 할미꽃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할미꽃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꽃 시절에는 꽃이 굽어 피다가 수정이 끝나면 고개를 들고 꽃대가 점점 자라면서 꼿꼿하게 장대처럼 큰키로 선다 꽃 시절 때 꽃대가 굽은 이유는 봄비...

    • 이상한 우산

      살다보면 우산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비가 올 때가 있다 어느 구름에서 비 올 줄 아나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거나 신문지라도 머리에 쓰고 가거나 그냥 몸으로 맞으며 가는 수밖에 없다 비 하나 맞는 게 뭐 그리 대수랴 아무리 산성비라고 하고 찬비 맞기 싫다 하더라도 스티로폴 판을 나무막대로 꿰어 저렇게라도 쓰고 가야 할까?

    • 줄딸기 - 가슴 설레는 꽃색깔

      줄딸기 김종태 가시에 한껏 찔리며 한옹큼 따주던 딸기보다 더 붉은 입술 아름삼삼 지워지기도 전인데 올해도 그 산자락 줄딸기꽃 가득하네 꽃잎 지거나 말거나 딸기 달리거나 말거나 애꿎은 꽃탓만 하네 떠난 줄도 몰랐으니 잡을 줄도 몰랐고 알았던들 갈고리로 붙잡아 두랴 가도가도 가시덩굴 사랑길은 천리 가시길 가시 더 따가우니 딸기맛 간절하고 꽃 서러우니 가시만 더 따갑네 줄딸기 Rubus oldhamii Miq. 산자락에...

    • 황매화 - 시골 고향집

      황매화 김종태 어머니의 한 폭 치마를 펼친 듯 소담한 네 한 무더기 누님의 저고리 도래선마냥 활처럼 팽팽하게 휘어진 자태 막내의 노랑저고라 초록치마 점점이 방울방울 그리운 얼굴들이다 황매화 Kerria japonica (L.) DC. 습기가 있는 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그늘에는 약하다. 높이 2m 내외이고 무더기로 자란다. 가지가 갈라지고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긴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고 길이 3∼7...

    • 낙화유수 - 하모니카

      낙화유수 落花流水 1.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가는 봄의 경치를 이르는 말. 2. 살림이나 세력이 약해져 아주 보잘것없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떨어지는 꽃에 정(情)이 있으면 물에도 또한 정이 있어 떨어지는 꽃은 물이 흐르는 대로 흐르기를 바라고 유수는 떨어지는 꽃을 띄워 흐르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남녀가 서로 그리워함을 이르는 말. 4. 춘양전이나 처용무에서, 두 팔을 좌우로 한 번씩 뿌리는 춤사위. ...

    • 내 생애 최고의 날

      내 비록 이 세상에서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오늘이야말로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아닌가 싶다 꽃피는 새봄에 공기 좋은 공원에 들려 꽃구경 실컨 하고 산책 즐기다가 엄마 아빠가 이리도 정성으로 내 용안을 사진으로 남기시겠다니 내 남은 생애가 비록 길다고는 하나 오늘처럼 행복한 날이 얼마나 되리오 먼저 산 선배들의 말인 즉 조금 더 늙으면 그때부터는 지옥이라고 하던데 입시 걱정을 할 필요가 있나 군대 걱정을 할 필요가 있나 취...

    • 무엇이든 사랑이 될 수 있다

      못쓰는 씨디를 가지고 나비를 만들었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휘황찬란한 빛을 번쩍이면서 입이 떡 벌어질 나비이다 무엇으로 나비를 만들 수 있을까? 색종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 다음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나뭇잎, 꽃잎 등등이다 폐씨디를 가지고 나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보통 사람으로는 힘든 일이다 살다 보면 무엇이든지 슬픔이 될 수 있다 남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나에게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남에게는 ...

    • 작은 술집

      인사동 대로 그 중간쯤 올라가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선 바로 거기 어디쯤 간판이 멋진 술집이 하나 있었다 깊은 인연이 없어서 간판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작은뜨락이었지 싶다 제목이 멋있어서 처음 그 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감탄 감격 그리고 단발마였다 아! 아니! 이럴수가! 너무나 작고 좁은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다닐 수가 없을 정도였다 세상에나 이렇게 작은 술집이 있을까 ! 폭이 1미터 남짓 하고 뒤집힌 기역자 꼴이...

    • 꽃바지 - 작은꽃 베스트10

      꽃바지 김종태 쓸모도 없는 잡풀이라고 뽑아버리지만 않으시면 감사합니다 이름 석자 알려고 신경만 써 주셔도 고맙습니다 꽃마리라고 불러주셔도 황공합니다 꽃바지라고 불러주시면 엎드려 절하겠습니다 잠시 곁에 앉아 내 얼굴 한번 꼼꼼히 읽어주신다면 평생 고마움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나를 가지고 나물로도 먹고 약초로도 쓴다는 것을 아시면 평생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내 이름 석자로 예쁜 시를 써 주신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모시겠습니다 B...

    • 개별꽃 -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이유

      개별꽃 김종태 처음 너를 만났을 때 참 감동이었다 날렵하고 아담하고 참하고 청초하고 뭐 대충 기타 등등 네가 피는 철이면 산자락마다 온통 너 너 너 솔직히 너무 흔했다 이름을 배우는데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웬 종류가 그리 많은지 안다고 하면 또 다르고 하나 알았다 하면 또 그게 아니고 이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차츰 너를 보면 고개를 돌렸다 한 20년 흘러 사진파일을 보다가 깜작 놀랐다...

    • 애인과 접사

      한동안 미친듯이 접사사진을 찍었다 접사의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주 작은 꽃에 매력을 느꼈다 접사의 포인트 무조건 가까이 다가서라 초점을 정확하게 맞추라 조리개를 취대한 줄여라 줌을 가능한 한 쓰지 마라 플래쉬를 절대 쓰지 마라 셔터를 누를 때 숨을 쉬지 마라 수수알만한 꽃이 모니터화면에 가득차게 나올 때 눈으로는 미쳐 보지 못했던 꽃의 아름다움이 보일 때 하루 종일 행복했었다 한동안 미친듯이 애인을 만났다 오로...

    • 할미꽃 - 우리 어머니의 일생

      할미꽃 김종태 진관 모래둥 천석지기 박씨 장녀 새고개 넘어 이십여 리 먹골로 시집왔네 먹골 부자 김씨, 셋째 아들에겐 금간 방구리 이빠진 보시기 바라기에 수저 두 벌 겉보리 닷말에 잘살거라 왜풀떼기 쪽져 팔고 긁쟁이, 꽃솎기, 봉지씌우기, 배따기 드난살이 광주리 장사라도 내 허리띠 옭매고 물배 채우면 알토란 다섯 자식 언제나 배불릴고 사십 년 땅강아지 하늘이 도와 천만금 거머쥔 부자 되었으나 모지라진 몸, 잦아진 기력...

    • 긴병꽃풀 - 투덜대는 사람에게 고함

      긴병꽃풀 김종태 난 왜 이럴까 꽃도 크지 않아 화려하지도 않아 키가 크지도 않아 땅바닥을 기어 다녀 누가 알아주지도 않아 남들처럼 너 투덜대지 말아라 이젠 네가 받은 복을 헤아려 보렴 햇빛 골고루 비치지 물기 촉촉하게 젖어 있지 줄기 쭉쭉 잘 뻗어나가지 잎사귀 동글동글 예쁘지 이제부턴 네가 받은 복을 이웃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렴 긴병꽃풀 학명 Glechoma hederacea var. longituba 분류 쌍떡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