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이 아니다
할미꽃은
꽃이 피면서부터 구부러져 있어서
등이 굽은 우리들의 할머니를 닮았다고 할미꽃이라고 부른다
또다른 이유는 꽃이 지고 씨가 영글 때 씨를 멀리 날아가게 해주는 털이
할머니의 머리카락처럼 하얗게 된다고 할미꽃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할미꽃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꽃 시절에는 꽃이 굽어 피다가
수정이 끝나면 고개를 들고
꽃대가 점점 자라면서
꼿꼿하게 장대처럼
큰키로 선다

꽃 시절 때 꽃대가 굽은 이유는
봄비에 꽃가루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여
벌들에게 최선의 꽃가루를 주기 위함이고
자라면서 꽃대가 길어지는 것은
꽃씨를 멀리 날려보내기 위함이다

무거운 짐 때문에
등이 굽은 그 사람은
언제나 그 등이 펴질까
짐을 내려 놓을 때가 언제일까
스스로 짊어진 짐은 누가 벗겨줄 수가 없다
굽은 등을 보면서 애처로왔다
그러나 그 때가 좋았다
땅을 보면서 수줍던 꽃시절이 좋았다
적어도 개구리는 좋았다

짧은 봄날
며칠 죽어라고 붉던 꽃은 덧없이 지고
할미꽃 이제는 등을 펴고 있다
하루하루 키가 커지는 꽃대를 바라본다
짐을 벗고 할미꽃씨앗처럼 멀리 훨훨 날아갈 때는
한 시절은 이미 다 사라지고 없을 때이다
이미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을 때이다
등이 굽었을 때 같이 놀아주던 개구리만
하늘을 쳐다보고 하릴없이 허황할 때이다
이미 등이 펴지기 시작한 할미꽃은
이미 할미꽃이 아니다

할미꽃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