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궁합

      문학지 편집부 모임이 있어서 모처럼 오래간만에 서초동이 들렀다 서울촌놈이라 강남 어느 번화한 곳에 오면 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이 정신이 없다 아는 사람이 새롭게 차린 <사월에보리밥>집에 갔다 동동주를 맛보았는데 태어나서 처음 그런 동동주를 마셨다 아주 담백하고 순하고 잡맛이 없으며 그윽하고 우아했다 다른 막걸리나 동동주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안주는 물론 전에 올렸던 삼합 그런 것이었다 서초동 번화한 거리에서 최신시설...

    • 삼합

      삼합이란다 세 가지가 합친 음식이란 말이다 아주 푸욱 삭혀 막힌 코도 뻥 뚫리는 삭힌 홍어회 아주 푸욱 묵혀 군둥내가 풀풀 풍기는 오래된 묵은지(묵은김치) 야들야들하게 익혀낸 껍데기와 비계가 듬뿍 들어간 삼겹살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싸서 먹는 삼합이란다 진짜 막걸리 한 사발에 이 삼합 한 쌈이면 세상이 부럽지 않단다 따로따로 놓고 보면 별볼일없는 음식들 그저 하찮거나 냄새 풍기는 음식들이 서로 보듬고 어우러지고 나누고 보태주고...

    • 시방 이렇습니다

      어떤 나뭇잎의 사랑 봄에는 앳된 신록으로 한여름에는 싱그러운 푸르름으로 가을 온몸 붉게 태워 단풍으로 당신 곁에서 당신을 위해 즐거이 지내다가 찬바람 불고 눈보라 칠 때 소리없이 뚝! 당신을 떠나 그래도 당신의 발 옆에 딩굴다가 겨우 내내 당신을 위해 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온몸 다 당신을 위한 거름으로 주고 이제 이렇게 백골만 남았습니다 시방 이렇습니다

    • 이런들 어떻습니까 !

      이게 뭘까요 ? 어디서 본 듯도 하고 이끼가 낀 것을 보면 나무 같기도 하고 맞아요 등나무입니다. 아니라구요? 이름표가 등나무라잖아요. 내 말이 맞죠? 등나무죠? 근데 얘는 왜 이렇게 자랍니까? 뭐가 못마땅해서 꽈배기처럼 배배 꼬며 자기가 자기몸을 배배 꼬며 산답니까? 남을 배배 꼬며 사는 녀석들은 그런다쳐도 얘는 왜 하필 자기몸을 배배 꼬며 자기가 자신에게 뒤엉켜 자란답니까? 인간이 그렇게 만들었거나 외부적인 이유 때문에 ...

    • 배꼽 빠지고 울화 터지고 황당한 내 이야기

      1. 종부세가 나왔다. 달랑 아파트 하나로 종부세가. 3% 이내에 속하는 나는 부자인가 보다 2. 빌려쓴 돈을 갚지 못하여 카드들이 정지되었다 지들끼리 정보를 주고 받아 하나가 정지되면 줄줄이 다 정지이다 3. 돈 만원이 없어서 어떤 때에는 3만원짜리 시화집을 만오천원에 친구들에게 떼어 맡기며 푼돈을 융통한다 4. 은행권에서도 제2금융권도 제3금융권도 모두 돈은 이제는 안 빌려준다 사채에서도 안 빌려준다 내가 거지라는 증거이다 5...

    • 이런 배도 배입니다

      골지천과 송천이 만나는 영월 아우라지이다 아우라지는 곱이굽이 천리 뱃길로 남한강 역사의 증인이다 그 옛날에는 한양까지 뗏목을 흘려보낸 곳으로 뱃사공과 처녀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영월역과 청령포 중간에 있다 그 역사를 뒤로하고 아직도 남아있는 흔적 하나 사진에서 보는 나룻배이다 근처에 다리가 있기는 한데 너무 멀어서 동네사람들이 불편하다 그래서 생긴 배가 이런 줄배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깊어 장대나 노로는 배가 떠내려 간다...

    • 감동 발레

      나도 저 남자 무용수처럼 딱 그만치 왼쪽다리가 조금 짧을 뿐이다. 무릎 위 십센치미터.

    • 여인이 어느 방향으로 돕니까?

      여인이 어느 방향으로 돌고 있습니까? 시계 방향입니까? 아니면 시계 반대 방향입니까? 위 애니메이션은 자신이 평소에 오른쪽 뇌를 주로 쓰는 사람인지? 아니면 왼쪽 뇌를 많이 쓰는 사람인지 판별해주는 척도 기능을 한다. 여인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사람은 평소에 왼쪽 뇌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왼쪽 뇌는 우리가 아는 대로 논리적이고 세밀한 사고와 사실에 입각한 생각과 판단을 하는 기능을 하며, 왼쪽 뇌가 잘 ...

    • 기찻길

      기차는 힘 세고 사람이나 화물을 엄청 실어나르지만 길이 아니면 못 간다 철길이 아니면 한발자국도 못 간다 자동차처럼 이리저리로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지도 못한다 겨우 정해진 방향으로만 갈 수 있고 그것도 남이 길을 정해주어야 갈 수 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기차가 갈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 사진에서 보는 전철기이다 옛날에는 사람 키만한 쇠막대를 좌우로 움직여 그 힘으로 전철기를 조작했다 지금은 사진처럼 전기의 힘으로 철커덕 방향...

    • 마로니에

      밤처럼 생겼지만 먹지 못한다 너무 쓰다 칠엽수라고도 부르는 나도밤나무과의 마로니에 나무와 그 열매 정말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내 청춘의 시절에 즐기던 음악 이 미련스럽게 살아온 세월이여 박건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청춘도 사랑도 다 시들어버린 지금은 미련스러운 게 아니라 서글프게 살아가는구나

    • 영혼의 평안을 구하는 기도

      순천만 영혼의 평안을 구하는 기도 김종태 성난 파도가 아니게 하여 주소서 제가 무엇이길래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가 되겠습니까? 제게 주신 것 모두 감사한데 무엇 때문에 제가 산산히 부서지며 여린 맘과 혼을 흔들겠습니까? 그저 잔잔히 당신의 사랑을 꿈꾸며 당신의 숨결을 느끼며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게 하여 주소서 한없이 낮아지게 하옵소서 더없이 낮아져서 때로는 땅속으로 스며들어도 그것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기뻐하고...

    • 그믐달

      10월 27일(음9월 29일) 새벽 6시 30분 동녘의 그믐달 – 곧 조금 더 밝아지면 그 모습이 사라진다 그믐달 김종태 똑같은 눈썹달 네 어여쁜 눈썹을 닮은 눈썹달이란다 내 파리한 윗입술을 닮은 입술달이란다 너는 나를 큰꿈을 부풀면서 기다리는 초승달로 알겠지만 이미 나는 역할을 다한 그믐달인걸 어쩌겠니 한때는 나도 분명 초승달이었고 반달이었고 온통 네 청춘을 밝히는 보름달이었지만 낮에 뜬 반달로 되더니 이제는 ...

    • 어떤 나무들

      목숨은 소중한 것 병신 소리 듣더라도 술집에서 혼자 훌쩍거리며 살지라도 최선을 다하여 살리라

    • 천성이 그렇다고 치자

      친절하게 이유를 설명해가며 전면주차를 해 달라고 써붙여도 소용없다 저들이 왜 후면주차를 하는지 아무리 궁리를 하고 좋게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중에 나갈 때 빨리 나가려고? – 난리가 난 것도 아닌데 후면주차가 더 편해서 – 누구든지 앞으로 가는 것이 편하다 회전반경이 좁아서? – 저기는 면적이 무척 넓다 아파트에서도 관리실에서 골머리를 앓는다 1층주차장에는 화단이 있고 그 화단 앞 주차장에는...

    • 슬프거나 외롭거나 혹은 쓸슬하더라도

      슬프거나 외롭거나 혹은 쓸쓸하더라도 그저 그러려니 하렴 사람이기에 슬프거나 외롭거나 혹은 쓸쓸한 것이라고 위로하렴 슬프거나 외롭거나 혹은 쓸쓸하더라도 네 자신을 탓하렴 그렇게 만든 네 자신을 결코 그 사람을 탓해서는 아니 되느니 슬프거나 외롭거나 혹은 쓸쓸하더라도 너 홀로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나니 그 길은 너 혼자 건너야만 하는 강이니 기다리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혹은 기억도 하지 말고 그저 그러려니 하렴 그렇게 모지라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