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번데기의 고백
데기데기데기 뻔데기

몇십 년 전에 듣던 말이다

번데기장수는 뻔! 뻔! 뻔! 한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못다한 말 데기데기데기를 주어섬기다가

드디어 한번이자 마지막으로 뻔데기 한단다



실크 우리말로 비단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만든다

태어나자마자 금지옥엽

시원하고 풍부한 먹이를 마껏 먹은 그 죄 하나로

번데기는 저 열탕 속에서 죽어간다

아마 누에고치를 삶아야지만 실이 잘 풀리나보다

끓인 다음 막대기로 홰 홰 자꾸 저으면

명주실 끄트머리가 막대기에 감긴다

그걸 실을 잣는 물레 같은 것에 감아 모으면 명주실이 되고

그 명주실로 비단을 짠다



알을 낳기 위하여 고치의 일부는 그대로 살려둔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치는 저렇게 가마솥에서 죽어가면서 그 화려한 명주실을 주고 간다

고치는 누에가 번데기로 그리고 나방으로 변태하기 위하여 만든 보호막 즉 집이다

누에는 20일 동안 왕자 대접을 받으며 자라다가

6-시간 동안 집을 짓고 번데기가 된다

1500미터의 명주실 때문에

누에는 날아보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

명주실을 얻으려면 도리없이 번데기는 죽어야 한다



인간의 화려한 변신을 위하여

몇천년 전부터 죽어간 셀 수 없는 누에들을 영혼을 위로하며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육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합법적은 물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죽어가야 하는가



한 마리 누에가 어쩔 수 없는 본능

유전자로 몸에 각인된 그 본능 – 고치를 만드는 본능

그 본능 때문에 죽어간다

어차피 누에는 누에일 때의 생명이 가장 화려한 시절이다라고

나머지는 잠시 변태의 과정과 알 낳는 과정이고

누에의 생명은 그게 다라고 자위한다지만

누에의 꿈은 하늘을 날아보고

짝짓기를 해보고 죽는 것이다



하나의 본능 때문에 또다른 본능을 희생하는 존재

동물을 사랑하자며 모피를 입지말자는 운동을 벌인다

만약 내가 누에가 불상하다며 비단을 입지말자고 운동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쳤다고 할 것이다

수없이 발전한 폴리에스터가 실크를 대신할 수 있는 현실에서

동물은 불상하고 벌레는 불쌍하지 않다면 신이 노여워할 것이다



인간의 화려한 욕망과 날고뛰는 재주와 한없는 자만을 경계하며

셀 수없는 역사 속에서 죽어간 셀 수 없는 번데기들을 생명을 위로하며

이 시간 또 한번 나를 가다듬어 본다

조물주가 보실 때

나는 번데기인가

나는 양잠농가주인인가

나는 실크옷을 입는 사람인가







어느 번데기의 고백



김종태




나는 몰랐다
참된 사랑인 줄만 알았다
네 잠 자도록
채반에 그득한 뽕 이파리들
금이야 옥이야 보살핌이 결국은
번데기로 죽어야 하는
내 목숨에 대한
님의 기본 투자인 것을
뜨거운 열탕 속에서
이제야 깨닫는다

우화하기 위하여
몸을 토하여 지은 이 성 때문에
우화를 못하는 운명
보금자리는 산산이 풀어져
욕심장이 님의 사치거리가 되고
번데기로 죽어가 군것질감이 되어도
나는 자랑스러이 말할 것이다
내 길을 열심히 갔고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고
고작 번데기는 아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