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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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달간 맑개 개인 날이면 맑고 투명한 공기와 짙푸른 하늘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한 이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혹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혹자는 건물 옥상에서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이거 대한민국 맞아?" "꼭 외국에 온 것 같지 않아?"라고 서로 반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은 대낮대로, 땅거미가 지는 석양의 하늘은 하늘대로, 빌딩 숲이 늘어선 도심은 또 도심대로, 녹음과 맑은 시내가 어우러진 교외는 또 교외대로, 모두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는 게 최근 대한민국의 청명한 공기요 기가막힌 경치들이다. 희뿌연 하늘과 탁한 공기, 숨쉬기조차 두려운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헬조선'을 이야기하던 게 불과 얼마전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국립환경과학원이 구체적 수치를 공개했다. 올해 9월의 전국 초미세먼지 월평균 농도가 8㎍/㎥로 초미세먼지 관측을 시작한 2015년 이래 동월 기준 최저치를 보였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전년 및 2015년 동월과 비교해 각각 33.3%, 52.9% 감소한 수치다. 9월 한 달간 초미세먼지 좋음(15㎍/㎥ 이하) 일수는 28일로 2015년 동월 대비 6일 증가했고, 나쁨이상(36㎍/㎥ 이상) 일수는 0일이었다. 2018년 이후 9월에는 지속적으로 나쁨이상 농도 수준은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만 놓고 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 대기환경정보에 따르면 9월 서울의 초미세먼지(PM2.5) 평균 농도는 7.03㎍/㎥으로 2014년 연중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저치다. 기존 최저치는 2018년 9월에 기록된 10㎍/㎥이다. 올 9월 평균 미세먼지(PM10) 농도 역시 15㎍/㎥로 관측 이래 가장 낮았다.

미세먼지가 대한민국 하늘을 가득 덮고 있던 2019년 초로 돌아가보자. 당시엔 '삼한사미'(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뜻)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미세먼지가 극심했다. 당시만해도 겨울철로 접어들어 날씨가 추워질 때쯤 중국쪽으로부터 서풍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미세먼지는 심해졌다. 물론 시기와 날씨, 풍향 등에 따라 다르지만 미세먼지가 극심할 때는 중국 영향이 70~80%에 달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반면 정부와 학계 일부에서는 국내 공기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중 국내발(發)이 40%에 달한다는 주장을 줄곳 펴곤했다. 중국發 미세먼지는 40~60% 정도라는 것이다. 미세먼지가 어디서 오는 지는 정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고 그때 그때 풍향이나 날씨 등 여러 변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누구도 정학한 수치를 대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미세먼지 수치가 대폭 낮아진 지난 몇달간 한반도 주변 바람에는 한가지 특징이 유지돼왔다. 서풍이 부는 날은 거의 없었고 거의 예외 없이 동풍 혹은 남풍이 불었다. 동품은 일본 쪽에서 한반도를 거쳐 중국쪽으로 부는 바람이고 남풍은 제주도 남쪽에서 한반도를 거슬러 북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남풍은 특히 여름~가을에 걸쳐 서해를 남에서 북으로 타고 오르며 중국에서 한반도 쪽으로 공기유입을 벽처럼 차단하는 역할을 지난 몇달간 지속해왔다.

미세먼지의 국내 요인이 40%라는 주장이 맞다면 최근 미세먼지가 관측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점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게된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미세먼지가 줄어든 이유를 기상의 영향과 국내 미세먼지 관리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우선 오호츠크해 부근에서 고기압이 강해지며 기압차로 인해 한반도와 동해상, 중국 북부지역까지 동풍이 증가해 차고 깨끗한 기류가 자주 유입되면서 초미세먼지 농도가 누적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는 기류 변화에 따라 중국發 먼지가 한반도에 별로 유입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내적 요인으로는 전국 굴뚝자동측정기기(TMS) 사업장의 1~9월 초미세먼지 배출량이 2015년 이후 2021년까지 지속적으로 감소(55% ↓)했고, 배출량은 전년 동기간 대비 약 9.7% 감소한 점을 들었다. 노후경유차 조기 폐차 등으로 5등급 노후차량의 대수가 2018년 12월 258만대에서 2021년 9월 기준 138만대로 46.5% 감소한 점도 꼽았다.

서울의 미세먼지 감소 원인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석탄 발전소 상황, 코로나 상황, 기상 여건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이종태 고려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미세먼지가 줄어드는 이유를 하나로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현재 중국이 석탄을 수입하던 호주와 갈등하면서 중국에서 미세먼지 배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한 국내 경제활동 감소와 경유차 조기 폐차, 국내 사업장 굴뚝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감축 등의 영향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따른 미세먼지 저감 효과는 지난 3~5년 이상 누적해야 비로소 의미 있는 숫자가 된다. 올들어 미세먼지가 급감한 원인을 설명하는 데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실제 국립환경과학원 한 관계자도 9월 미세먼지가 크게 줄어든 이유에 대해 "국내 대형 사업장 굴뚝 미세먼지 측정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외부에서 대기유입이 많이 없는 달이었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대기의 흐름이 바뀌면서 중국으로부터 기류가 거의 유입되지 않았고 그 결과 청명한 공기가 가능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국내發 미세먼지 발생이 크게 줄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이제 곧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전형적인 서풍이 부는 계절이 되는 것이다. "중국 영향도 있지만 국내발 미세먼지가 많이 줄어들어 공기가 맑아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이 맞으려면 일정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겨울로 접어들고 서풍이 불어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대기유입이 본격화하더라도 미세먼지 농도가 2019년보다는 훨씬 낮다면 이들의 말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다시 2019년초를 방불케하는 뿌연 하늘이 재연된다면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과연 올 겨울 대기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