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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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자에게만 다중이용시설 출입을 허용하는 제도인 '백신 패스'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당장 일정표를 제시하진 않았다. 다종다기한 의견이 분출할 수 있고, 의외로 인화성 큰 논란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백신 패스 반대가 올라간 것만 봐도 그렇다. 백신 패스는 과연 정의로운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 필요성이야 두말할 나위 없겠지만, 정책은 예술처럼 국민 정서에 잘 스며들어야 최선책이다. 5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백신 접종을 기피하고 있고, 이들의 예약률 또한 5%선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불가피하다.

이쯤에서 몇 가지를 단어를 떠올려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첫번째는 '마스크'다. 코로나 사태 초반, 마스크 의무 착용 문제로 서구 사회에선 논란이 컸었다. 마스크에 대한 그들의 사회문화·역사적 거부감 때문이었다. 반면 그런 문제가 적었고, 다수의 안전을 위해 소소한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는 동양, 특히 우리나라는 잘 도입됐다.

그러면 백신 패스도 마스크 착용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 착용이야 처음에 구하기 어려워서 그랬지, 경제적 비용이나 착용의 답답함 정도는 집단에서 소외받고 왕따받는 것보단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데, 이 또한 거부반응은 적었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겐 알레르기·약물거부반응 같은 개인의 신체적 특질, 신앙적 원칙이나 과학적 인식, 단순한 접종 두려움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와 요인에도 불구, 백신을 맞으라고 강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다음으로 우리나라가 미국 같은 나라처럼 백신 접종을 절대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도 아니다. 미국인의 약 20%는 백신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고, 그래서 접종률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기민하게 백신 확보와 접종을 시작했는데도 지난 3일 현재 미국의 1차 접종률은 64%로, 한국(77%)보다 낮다. 접종완료율도 55%에 머물러 한국(52.6%)에게 곧 추월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미국이니 '백신 패스'보다 훨씬 강력한 민간회사나 의료법인의 의무접종 논란으로 시끄러운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500만명의 백신 거부 문제로 미국처럼 강제하고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백신 확보 문제만 불거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접종 완료율은 거의 집단 면역 달성이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을까. 비전문가의 막연한 개인 의견은 아닐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접종자에게 적지 않은 불이익을 주고, 접종을 사실상 강제하는 백신 패스를 여러 겹, 여러 조건으로 만든다면 백신을 다 맞은 사람도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 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백신 패스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어려운 한국만의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일단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 정치 일정이 그런 예다. 또 현 정부는 겉으론 젠더 감수성을 말하고,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는 입장을 가진 듯 말해왔다. 차별금지법이 정의당에서만 발의된 게 아니다. 민주당도 발의했다. 그런데 백신 안 맞았다고 차별한다고? 아무리 국가주의와 공동체의 선을 강조하는 현 정부이지만, 뭔가 앞뒤 맞지 않는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결국 미접종자가 외부 활동을 할 경우 무증상 감염 등 우려가 적지 않음을 인식시키고, 최대한 외부 활동의 빈도수를 줄이고 안전한 방역수칙 따르기를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 정도면 국민들도 큰 반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미접종 의사를 굽히고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흔히 말하는 '너지(nudge)'나 '행동 디자인'을 정책 설계에 반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진보의 가치를 말하면서, 국가경영은 마치 50년 전 통제사회처럼 하고 있는 지금 정부가 과연 코로나 2년의 시간을 보내며 얼마나 스마트 해졌을지 한편으론 궁금하다.

장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