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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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주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일부 주주가 주주권을 남용해 기후 정책을 과도하게 밀어붙인다는 이유에서다. 기업이 투자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게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친환경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반발심리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표출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엑손모빌은 텍사스 지방법원에 투자 자문사 아르주나 캐피털과 행동주의 투자사 팔로우 디스 등의 주주 제안이 주주총회 안건에 상정되지 않게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엑손모빌은 오는 5월 29일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엑손모빌은 "해당 투자자 단체가 2021년 완화된 주주제안 조건을 악용하며 기업활동의 ‘사소한 부분’까지 간섭하려 들었다"며 "'세세한 관리 영역'까지 간섭하는 것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아르주나 캐피털과 팔로우 디스 등은 주요 정유사들이 보다 엄격한 기후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엑손모빌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저감하기 위한 '스코프 3' 목표를 앞세웠다. 스코프 3은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과정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저감하는 목표를 뜻한다. 협력사와 소비자들의 가스 배출량을 고려해서 저감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두 기업은 2021년에도 기후정책 강화에 관한 주주 제안을 했다. 정책 목표를 비롯해 시행날짜도 명시했다. 지난해에도 동일한 주주 제안을 제출하며 기업활동을 방해했다는 것이 엑손모빌의 주장이다.

엑손모빌은 "SEC가 주주 제안에 관한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했다"며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안건을 막기 위해선 소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아르주나 캐피털과 팔로우 디스가 내놓은 주주제안은 2022년 주총에선 찬성률이 27.1%에 그치며 부결됐다. 지난해에는 10.5%로 찬성률이 떨어졌다. 다른 주주들은 친환경 정책에 염증을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엑손모빌의 소송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주주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많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드물어서다. 주주에게 소송을 제기한 것은 미국 정유사 중에선 엑손모빌이 처음이다.
재계의 역습 "이례적"…주주제안 맞서 소송 제기한 엑손모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미국 재계가 가진 친환경 정책에 대한 염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해석했다. FT에 따르면 뉴욕증시에 상장된 에너지 기업들은 1년에 10회 이상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라는 주주제안을 받고 있다. 당국의 규제와 주주들의 반발을 우려한 기업들은 이를 수용해왔다.

엑손모빌도 2021년 사회적투자 전문 헤지펀드인 '엔진 넘버원'에 이사회 자리 3개를 넘겨줬다. 지난해에는 캘리포니아 규제당국으로부터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 인식을 호도했다"며 제소당하기도 했다.

에너지 기업이 외통수에 몰리면서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다른 방식에 비해 비교적 비용이 덜 드는 주주 제안으로 기업 경영진을 공격한다는 설명이다. 재계에선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한 반발 심리가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다.

FT는 "이번 사태는 SEC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며 "만약 엑손모빌이 승소할 경우 친환경 정책을 비롯해 주주와 기업 간의 관계도 재정립될 수 있다"고 전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