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골든 캡슐팀'이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 국제전에서 우승팀으로 선정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홍익대에 재학 중인 김대연 씨, 신영환 씨, 채유진 씨, 백원 씨. 사진=다이슨 코리아 제공
'골든 캡슐팀'이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 국제전에서 우승팀으로 선정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홍익대에 재학 중인 김대연 씨, 신영환 씨, 채유진 씨, 백원 씨. 사진=다이슨 코리아 제공
“다이슨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빼기의 혁신’을 일으켰어요.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처럼요. 저희도 다이슨처럼 불편의 원인을 제거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중력 없이도 작동하는 수액 링거 ‘골든 캡슐’을 떠올렸습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채유진 씨는 서울 역삼동 다이슨 코리아에서 취재진과 만나 ‘골든 캡슐’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이 발명품은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 국제전에서 1970개의 다른 아이디어를 제치고 한국 출품작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다이슨 어워드 한국인 첫 우승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는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 수석 엔지니어가 만든 상이다.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천을 위해 일종의 사회 공헌 사업으로 미래 엔지니어를 발굴하고 지원하겠다는 의도다. 일상 속 문제를 명쾌하면서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작품에 수여한다. 올해는 한국,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 전 세계 30개 국가에서 참여했다. 각 국가의 국내전에서 수상한 90개 출품작 중 20개가 국제전 우승 후보에 올랐고, 다이슨 수석 엔지니어가 직접 우승작을 뽑았다.

한국 참가자가 국제전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승팀은 홍익대 학생들로 이뤄진 골든캡슐팀. 채유진 씨를 비롯해 같은 학과에 다니는 백원 씨,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에 재학 중인 김대연 씨, 신영환 씨가 꾸린 팀이다. 이들에게는 3만 파운드(약 49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될 예정이다.

골든 캡슐은 재난 현장용 수액 주입 장치다. 특징은 용기에서 수액을 분출시켜 환자의 몸에 주입시킬 때 중력이나 다른 동력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기존 수액 팩은 높이 차에 따른 중력을 이용하므로 장애물이 많은 재난 현장에서도 응급 구조원이 환자의 팔보다 높게 팩을 들고 이동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중력을 이용하지 않는 제품도 개발됐지만, 보통은 전기가 필요해 재난 현장에서 무용지물이다.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얻은 계기는 2023년 2월 5만 명 이상 사망한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현장이었다. 채 씨는 “구조대원은 1000ml짜리 수액팩 2~3개를 1시간 가까이 들고 폐허 속을 이동해야 한다”며 “불편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골든 캡슐은 기압 차와 풍선의 탄성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했다. 수액은 탄력 있는 풍선에 넣고, 이 풍선을 다시 밀폐된 플라스틱 용기 안에 넣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유입되는 공기량을 조절하면 풍선에 공기의 압력이 가해지고, 수액이 분출되는 원리다. 공기를 얼마나 주입하느냐에 따라 수액 분출 속도도 바꿀 수 있다.

일상 속 문제 창의적 해결

수상자들에게 이 작품의 수상 소식을 가장 처음 전한 사람은 다이슨 수석엔지니어였다. 지난해 10월 24일 학생들에게 예고 없이 화상 통화로 깜짝 등장해 수상 소식을 알리고, 발명품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김대연 씨는 “다이슨 수석엔지니어가 등장하는 줄은 전혀 몰랐기에 직접 보는 순간 정말 흥분했다”며 “우리 발명품이 일상 속 명확한 문제를 남다른 방법으로 해결했다고 코멘트해줬다”고 말했다.
홍익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골든 캡슐팀'이 개발한 무동력 수액 주입 장치 '골든 캡슐'. 기존 수액 팩은 중력을 이용하므로 환자 팔보다 높은 위치를 유지해야 하지만, 기압과 탄성을 이용하는 골든 캡슐은 위치가 상관없다. 사진=다이슨 코리아 제공
홍익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골든 캡슐팀'이 개발한 무동력 수액 주입 장치 '골든 캡슐'. 기존 수액 팩은 중력을 이용하므로 환자 팔보다 높은 위치를 유지해야 하지만, 기압과 탄성을 이용하는 골든 캡슐은 위치가 상관없다. 사진=다이슨 코리아 제공
네 명의 학생은 모두 디자인과 공학을 동시에 공부해 첨단 분야 디자인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백원 씨는 “이번 공모전에 참가하기 전에는 복잡한 과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며 “공모전 과정에서 간단명료한 원리가 더 도움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골든 캡슐은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임상실험 허가를 받기 위한 심의 단계를 거치는 중이다. 김대연 씨는 “전쟁과 재난 현장에 우선적으로 꼭 보급되면 좋겠다”며 “또 환자가 거동하기 불편하지 않도록 만든 수액이기에 향후 병원과 가정, 군대 등 일상생활에서도 범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이슨 측은 2005년부터 매년 공모전을 개최하고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를 시상하고 있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상이다. 미래의 엔지니어를 지원한다는 취지에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발명품을 발굴해낸다는 의미도 더해진 상이다. 지금까지 이 공모전을 통해 400개 이상 발명품이 세상에 나왔고, 100만 파운드(약 16억원)에 달하는 상금이 수여됐다.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은 일상 속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는지다. 다이슨 코리아 관계자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명확한지, 아이디어의 작동 원리와 제작 과정은 잘 설명되는지, 아이디어가 독창적인지,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지 등을 심사한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기후, 인권 문제가 대두되는 최근에는 ESG 정신에 부합한 발명품이 대거 수상하는 추세다.

전력 소비 줄이는 페인트... ESG 발명품 대거 출품

이런 심사 기준에는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 수석엔지니어의 발명 정신이 깊게 반영돼있다. 다이슨은 1993년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라는 아이디어에서 처음 시작된 기업이다. 이후 비행기의 제트엔진과 비행기 날개의 원리에서 착안한 날개 없는 선풍기 등을 출시하며 세계적인 생활가전 기업으로 성장했다. 청소기와 선풍기 등은 이미 개선할 점 없이 완성된 제품이라고 간과할 수도 있지만, 다이슨은 그 안에서 사용자의 ‘페인 포인트’를 집어내 새로운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을 끄집어낸 것이다.

최근에는 ESG의 중요성을 고려해 본상 우승작뿐 아니라 지속가능성 부문과 인도주의 부문을 신설해 따로 수상작을 뽑고 있다. 이번 공모전에서는 지속가능성 부문에서 홍콩 학생들의 ‘이-코팅(E-COATING)’이 수상했다. 폐유리로 개발한 코팅 페인트로, 수많은 작은 유리 조각이 햇빛을 반사해 냉각 효과를 준다. 날씨가 덥고 집이 좁은 탓에 에어컨이 전체 전력 소비의 31%를 차지하는 홍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명품이다.

이 밖에도 국제전 우승 후보작에는 튀르키예 팀의 산불 감지 시스템 ‘포레스트가드 2.0’, 호주 팀의 자동차 내연기관을 하이브리드 전기장치로 바꿔주는 ’REVR’ 등이 선정됐다.

최예린 한국경제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