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설익은 정책으로 전기車 소비자 혼란만 야기한 정부
“아직 시행 시기나 방법이 확정된 게 아니다.”

지난 5일 환경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거듭 이같이 당부했다. 무슨 얘기일까. 전날 기획재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여기엔 올해 정부가 자동차업계의 전기자동차 가격 인하 금액에 비례해 소비자에게 구매 보조금을 추가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는 동시에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이다. 그런데 정작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확정된 정책이 아니다”며 손사래를 치고 나섰다.

경제정책방향에서 기재부는 한발 더 나아가 ‘추가 보조금의 지급 수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해 9~12월 한시적으로 도입한 전기차 보조금 추가 지급 조치를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했다. 당시 정부는 자동차업체의 전기차 할인액이 500만원 이상이면 이와 연동해 최대 100만원의 국고 보조금을 추가 지급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환경부는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현재 환경부의 우선 과제는 ‘전기차 할인과 연동한 추가 보조금 지급’이 아니다. 환경부는 아직 ‘2024년 전기차 보급 사업 보조금 업무 처리 지침’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 지침이 확정돼야 각 지방자치단체가 전기차 보급 사업 공고를 내고,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살 때 보조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늦어도 다음달까지 보조금 개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서두르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재부가 발표한 추가 보조금 지급 정책이 마치 확정된 것처럼 알려지면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 시점을 더 늦출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4만9939대로 1년 전보다 3.8% 줄었다. 2021년 115.1%까지 치솟았던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2022년 63.8%로 떨어졌다. 급기야 작년에는 역성장을 했다. 지난해 정부가 보조금을 추가 지급한 것도 전기차 판매가 줄자 내놓은 고육지책이었다.

올해 전기차 시장 전망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예산(1조7340억원)은 작년보다 10%가량 감소했다. 대당 국고보조금은 작년 500만원에서 400만원가량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부처 간 협의도 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을 섣불리 발표하면서 소비자 혼란만 커졌다. 부처 간 협의를 서둘러 보조금 정책 방향을 보다 확실하게 결론지어야 한다. 부처 간 떠넘기기를 더는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