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1천500억달러 확대"…현재 대출 규모 4천600억달러
"WB 대출능력 대폭 상향"…중국의 개도국 영향력 견제 나선 미국
미국이 세계은행(WB)의 대출 능력을 대폭 높여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대 주주인 미국을 포함한 WB 회원국들은 연차총회가 열리고 있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대출 능력을 1천억달러(약 134조원)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최대 500억달러 확대안에 앞서 합의했었는데, 더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난 6월 현재 WB와 하부 기구들은 4천600억달러의 미상환 대출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WB를 키워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남반구 개발도상국)'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겼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연차총회에 앞서 수년간 각국을 순방하며 기반을 다졌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중국이 주도하는 것보다 여전히 우월하다고 이들 국가를 설득해온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거나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WB 회원국 중 많은 개발도상국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제레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 4월 "우크라이나전쟁 대응의 가장 큰 성과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단결이었다"면서 "가장 큰 실망은 글로벌 사우스의 지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개도국들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에 대한 지원 사격에 주저한 것은 러시아와 역사적 유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방이 우크라이나전보다 자국 문제를 등한시했다고 불만을 품은 것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다.

중국은 이들 국가에 오랫동안 WB보다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협회(CFR) 브래드 세처 선임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2011~2019년 WB와 다른 다자개발은행이 저소득 및 중간 소득 국가에 대출해준 금액은 총 2천410억달러에 불과했지만, 중국 은행들은 같은 기간 4천730억달러를 빌려줬다.

또 중국은 돈을 건네면서 미국처럼 피공여국 내 부정부패나 인권, 환경 등 문제들을 잘 거론하지 않는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올해 초 X(옛 트위터)에 "개도국의 어떤 사람이 내게 '우리가 중국에서 얻는 것은 공항인데, 미국에서 얻는 건 강의다'라고 말했다"는 글을 올렸다.

다만,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

WB 등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대출을 강화했지만, 중국은 과거 대규모 대출이 부실해지자 회수에 나섰다.

중국은 '차이나 머니' 살포와 함께 WB 회원국이지만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처럼 미국보다는 자국이 더 지배적 위치에 있는 국제기구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력해오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