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남의 돈' 쓰는 사람들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유배 생활 중에 600여 권의 책을 썼는데, 백성의 곤궁한 삶을 목도하면서 저술한 <목민심서>가 으뜸이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청렴이다. “청렴은 수령의 본분이요, 모든 선의 근원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 가르침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 부처와 공기업 교육 과정에서 최고 덕목으로 꼽힌다. 교육받을 때뿐이었을까. 감사원의 ‘공공기관 경영관리 실태’ 보고서에는 공직사회에 여전한 부패의 백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민 세금인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쓴, 아니 자기 돈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낭비하지 않았을 불법과 도덕적 해이, 부정의 사례에 기가 막힐 정도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전 가스공사 사장은 지난해 4월 영국 런던으로 3박5일 출장을 다녀오면서 1박에 260만원짜리 호텔 스위트룸에 묵었다. 장관급 공무원의 해외 숙박비 상한(95만원)의 2.7배에 해당한다. 이를 모르지 않았을 그가 스위트룸에서 두 다리 뻗고 얼마나 편하게 쉬었을지 궁금하다.

지역난방공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의 법인카드를 사적 용도 등에 897차례나 유용한 산업통상자원부 5급 사무관의 갑질은 상상을 초월한다. 산하기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사무관이 ‘산하기관 돈은 내 쌈짓돈’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5년에 걸쳐 이런 무도한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경기지사 시절 7급 공무원이 법인카드로 구매한 조식용 샌드위치와 과일, 생활용품 등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부는 또 어떤가. 집에서 만들지 않은 음식을 140여 일간 거의 매일 먹으면서도 몰랐다는 해명은 궁색할 뿐이다.

세금을 다루는 공직자들은 늘 아찔한 경계에 서 있다. 원칙과 절제의 둑이 한 번 무너지면 일탈은 일상화하기 십상이다. 공직자가 이재를 탐하면 조직은 물론 자신도 망친다. 우리 공직사회에서 청백리로 존경받는 고건 전 총리는 다산의 ‘지자이렴(知者利廉)’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현명한 사람은 청렴이 궁극적으로 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좀처럼 부정(不正)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류시훈 논설위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