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ETF 개인투자자에도 주총 의결권 부여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내년부터 자사가 운용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에게 ‘대리 투표(proxy voting)’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방침이다. ETF 운용 과정에서 주주들의 의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미다.

기후 문제 등 환경‧사회‧거버넌스(ESG) 관련 투자에 앞장서 온 블랙록은 미국 공화당으로부터 ESG 이슈에 매몰돼 수익 창출은 뒷전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 결정은 이런 지적에 반박하기 위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란 평가지만, 관련 논란을 정면돌파하기보다는 단순히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18일 로이터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코어 S&P500 ETF(IVV)에 자금을 넣은 개인 투자자들은 내년부터 대리 투표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통상 펀드가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은 해당 펀드를 관리하는 자산운용사가 투자자들을 대신해 행사하는데,투자자들이 직접 이 과정에 관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다.

블랙록은 이미 기관투자자들에게는 해당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3월 말까지 555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보유한 기관투자자들이 의결권 행사에 나섰다.

IVV는 3420억달러(약 434조원) 규모로 운용되는 블랙록의 최대 ETF 상품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 중 약 절반을 보유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특정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IVV의 의결권 행사 방침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대리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기독교적 가치나 ESG 요소를 우선순위에 둘 것을 요구하는 정책을 포함해 총 7가지 옵션이 제공될 예정이다. 기존대로 블랙록에 의결권 행사를 완전히 위임하는 선택지도 있다.

블랙록의 인베스트먼트 스튜어드십 부문 글로벌 책임자인 주드 압델 마제이드는 “많은 고객들이 계속해서 블랙록에 의결권을 위임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자산운용사로서 우리의 수탁 의무이기도 하다”며 “그러나 대리 투표에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고자 하는 고객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블랙록, ETF 개인투자자에도 주총 의결권 부여한다
자산운용업계에서 이런 움직임은 트렌드가 돼가고 있는 분위기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지난 4월 57개 인덱스 ETF와 뮤추얼펀드를 대상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7가지 옵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옵션은 노동친화적인 것부터 경영친화적인 것까지 다양하게 제공됐다. 이 운용사는 올 연말까지 전체 운용 자산의 82%에 이를 적용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뱅가드는 지난달까지 자사 펀드 중 3개를 선정, 여기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에게 4가지 옵션을 주는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블랙록과 스테이트스트리트, 뱅가드 세 회사가 운용하는 자산 규모가 20조달러(약 2경5000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력한 영향력”이라고 로이터가 전했다. 이밖에 찰스슈왑과 같이 개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진행한 운용사도 있었다.

자산운용사들은 그간 보수와 진보 진영 양측으로부터 십자포화의 대상이 됐다. 이들이 많게는 미국 기업 주식의 20%를 보유하면서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측 인사들은 운용사들이 재정적 수익보다 ESG 관점에서의 목표에 치중돼 있다고 지적해 왔다. 진보 성향의 사회 운동가들은 반대로 기후 문제 관련 주주 제안에 대한 지지율이 전년 대비 줄어든 데 대해 비난하고 있다.

블랙록을 포함한 자산운용사들은 이런 지적들에 대해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고 항변해 왔다. 대리 투표권을 확대하기로 한 이번 결정은 이런 주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FT는 평가했다.

마제이드 책임자는 “블랙록은 모든 투자자가 주주투표 과정에 참여할 선택권을 갖는 미래가 오길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