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반란 사태가 끝난 후 26일(현지시간) 첫 연설에서 "바그너 반란의 지도자들은 러시아가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 질식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고 비난했다. 영국 BBC방송은 "푸틴 대통령은 격렬한 표현으로 가득 찬 짧은 연설에서 반란의 주동자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의 어조는 격앙되어 있었고 입술은 말려 있었다"며 분노한 푸틴을 묘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앞서 반란 중단의 대가로 사면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입건은 취소될 것"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도 연설에서 바그너 그룹 휘하 용병들을 '애국자'로 칭하면서 러시아군 합류를 허용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벨라루스 망명도 허락한다고 재확인했다.

프리고진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SNS 등을 통해 벨라루스의 한 호텔에서 목격됐다는 얘기와, 프리고진 소유 비즈니스 제트기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인근 공군기지에 도착했다는 소식 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는 텔레그램 메시지로 "'정의의 행진'은 러시아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작년 2월 24일(우크라이나 침공일) 어땠어야 하는지 우리가 마스터 클래스를 보여줬다”며 “바그너 그룹의 1000㎞ 진군을 통해 러시아의 심각한 안보 문제가 드러났다”며 러시아 정부를 겨냥한 발언을 그치지 않았다.

정국을 안정시킨 푸틴이 자신을 배신한 측근 프리고진을 상대로 '정의실현'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프리고진에게 "열린 창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던 러시아 국회의원 파벨 안토프와 석유 기업 루코일 PSJC 회장인 라발 마가노프 등이 건물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추락해 사망했다.

바그너 용병들이 모두 무사할지도 미지수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체첸의 아흐무트 특수부대가 바그너 그룹이 주둔했던 로스토푸온돈 기지에서 말 그대로 500~700m옆에 대기하고 있었다"고 뒤늦게 보도했다. 관영 통신사 타스가 푸틴 대통령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군에)군사 행동을 피하도록 지시했다"는 발언을 강조하기 위해 내보낸 기사로 해석된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한 번 자비를 베풀었으나, 향후 언제든지 바그너 부대의 뒤를 칠 수 있다는 위협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