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애플, 죽음의 키스"
2021년 1분기 세계 자동차시장의 최대 이슈는 ‘애플카’였다. 애플이 현대자동차·기아, 닛산 등 완성차 업체 5~6곳과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을 위해 협상하고 있다는 뉴스가 국내외 언론을 달궜다. 그러나 양측의 생각은 달랐다. 소프트웨어 기술 협력을 기대한 완성차 업체와 달리 애플은 자신이 원하는 스펙대로 제품만 생산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존 자동차 업체로선 ‘애플만 좋은 일’에 들러리 설 이유가 없었다. 협상은 한 달여 만에 모두 결렬됐다.

‘슈퍼 갑(甲)’ 애플의 위세에 눌려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협력사들이 전하는 애플의 갑질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주문한 부품을 생산해 놓으면 제때 구매하지 않다가 재고가 쌓이면 이른바 ‘떨이’로 가져간다는 소문도 들린다. 지난해 말 폭스콘의 중국 정저우 공장 노동자의 대규모 시위가 애플 특유의 빡빡한 통제가 누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었다.

기술과 인력을 사실상 탈취한 사례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애플이 부르면, 그것은 죽음의 키스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중소기업 경영진, 발명가, 변호사 등을 인용해 “애플이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과 파트너십 구축을 논의하다 결국 인력과 기술을 모두 가져간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애플은 2018년 혈액 산소 측정기 업체 마시모의 설립자 조 키아니에게 먼저 연락해 협업을 요청했다. 하지만 애플은 키아니와의 만남 이후 기존 연봉의 2배를 제안하며 마시모의 엔지니어와 최고의료책임자 등을 시작으로 30여 명의 인력을 잇달아 빼갔다. 이듬해 마시모 기술과 유사한 센서 특허를 출원했고, 혈중 산소 농도 측정 기능을 적용한 애플워치를 출시했다. WSJ는 “애플은 중소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면 수십 건의 특허 무효 소송으로 반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애플은 직접 제품을 생산하지 않지만 연구개발(R&D) 인력이 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협력사가 생산할 부품을 개발·설계하며 ‘애플 생태계’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첨병이다. 마시모의 사례와 비슷한 방식으로 채용돼 애플에서 일하는 R&D 인력이 몇 명일지 궁금하다.

류시훈 논설위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