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투자 셈법 바꿨다"… ESG 선도한 美 블랙록의 '변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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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블랙록 ESG 안건 찬성률 급감
26일(현지시간)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ISS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올 상반기 투자기업들의 연례주주총회에서 환경 및 사회 이슈 관련 주주제안의 24%에만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상반기 찬성률이 43%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블랙록은 이날 발표한 주주제안 투표 현황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기후변화 대응 관련 주주제안 은 기업의 재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들이 세운 에너지 전환 계획의 속도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며 "우리 주변의 투자환경과 맥락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랙록은 그간 ESG 투자 열풍을 선도해온 자산운용사다.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1월까지만 해도 투자자 연례 서한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도록 기업들에 요구하는 블랙록의 정책은 정치적 목적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 수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었다.

◆방산업체 투자 빗장 푼 유럽 투자사
ISS 자료에 의하면 환경 및 사회 이슈 안건에 대한 주주들의 총 찬성률은 작년 상반기 36%에서 올해 27%로 떨어졌다. 경제연구기관 컨퍼런스보드는 "특히 기후변화 대응 등 친환경 주주제안에 대한 투자자들의 찬성률은 상반기 33%로 지난해 동기보다 4%포인트 쪼그라들었다"고 평가했다. 블랙록처럼 노골적으로 ESG에 반기를 든 또 다른 글로벌 자산운용사로는 뱅가드가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업과 투자자, 정부 간의 이해상충은 때때로 E와 S, G 각각의 지표가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며 "예를 들어 유럽 정부들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제재라는 윤리적 목표를 달성하고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에 의존함으로써 친환경 목표 위반을 감수하고자 하는 모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을 통해 지속가능한 투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정의할 수 있는 ESG 진화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佛토탈의 양다리 투자 전략 '재조명'

FT는 "패트릭 푸얀느 토탈 CEO의 뚝심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토탈은 전쟁이 발발한 직후 러시아 사업부에서 발빠르게 손뗀 다른 에너지 기업들과도 달랐다. 푸얀느는 러시아 야말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투자한 지분을 "적절한 인수자를 찾을 때까지 서둘러 팔지 않겠다"고 버텼다. 최근 유럽이 가스 대란으로 몸살을 앓게 된 뒤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무작정 철수하지 않은 토탈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얀느가 CEO로 취임한 2014년 1월 이후 현재까지 토탈의 주주수익률은 80%에 달했다, 전 세계 6대 에너지 기업들의 동기간 주주수익률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푸얀느는 "ESG 찬성론자들은 에너지 전환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며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관한 화두의 문제점은 에너지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매우 복잡한 것이라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대표적인 '탈(脫)원전 국가' 독일이 당초 연말까지 전면 폐쇄하기로 했던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전쟁으로 인한 전력난을 우려한 조치다. 독일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발전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많지 않다"며 원전의 친환경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