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최근 내린 폭우로 홍수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인도·방글라데시 지역.사진=AP연합뉴스
최근 내린 폭우로 홍수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인도·방글라데시 지역.사진=AP연합뉴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의 끝이 보이나 싶던 찰나, 식량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국제사회를 강타했다. 석유 가격이 크게 올라 개인 차량 유지비가 늘어난 것에 이어,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해 화물연대 파업 같은 사회적 갈등까지 촉발했다. 식료품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밀가루 가격은 2021년 말 대비 40% 넘게 상승했고, 가축 사료로 많이 쓰는 옥수수와 대두 가격도 크게 올랐다.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어수선한 와중에 통계청이 발표한 곡물 자급률은 사상 처음으로 20% 아래인 19.3%를 기록했다. 통계청과 달리 농림축산식품부는 곡물 자급률이 20.2%라고 발표했는데, 어떤 숫자든 한국에서 소비되는 곡물 중 80% 정도가 수입산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국립식량과학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곡물 수요는 지난 40년간 2배 증가했지만 국내 농경지 면적은 30%가량 감소했다. 그 결과 같은 기간 곡물 수입량은 7.4배나 늘었다.

기후와 식량안보는 분리 불가

우리나라는 많은 물자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자원의 경우 95%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실제로 최근 원유·천연가스·석탄을 비롯한 국제 에너지자원 가격이 상승해 수입 비용이 훌쩍 뛰었다. 지난 5월 우리나라는 전년 동월 대비 21.3% 증가한 615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렸지만, 수입은 32.0% 증가해 17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국제 정세에 따라 가격과 수급이 급변하는 에너지자원을 해외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지만, 식량은 더 큰 문제다. 산업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휘발유값이 비싸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카풀을 할 수 있지만, 빵값이 올랐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 빵을 같이 먹는 ‘빵풀’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제 에너지자원과 식량 가격이 오른 원인 중 하나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다. 러시아가 보유한 가스와 석유가 서방의 경제 제재로 수출되지 않고, 매년 수백만 톤의 곡물을 수출하던 우크라이나가 곡물을 수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쟁이 끝난 뒤 식량 가격이 예전처럼 낮아질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가뭄이나 폭염 등 기후변화로 촉발된 이상기후 현상의 반복으로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0년에 촉발한 ‘아랍의 봄’ 시위를 돌이켜보자. 인도, 러시아 등 곡창지대에서는 2007·2008년 심각한 가뭄을 맞이했다. 이는 전례 없는 흉작으로 이어져 수많은 나라가 밀·쌀·옥수수·콩 등 곡물의 수출을 금지했다. 국제 곡물가는 수직 상승했고,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지역의 많은 나라에서 식량 문제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는 해당 국가의 부패 행위에 대한 시위로 확산해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등 정권이 뿌리째 흔들리게 만들었다. 전쟁은 없었다. 그저 아주 넓은 지역에 비가 덜 내린 것뿐이다.

가뭄은 미국 사례가 대표적이다. 옥수수 주산지인 미국 중서부에 심각한 가뭄이 들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전 세계 옥수수 가격이 급등했다. 이는 옥수수를 재료로 하는 각종 식품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국 중서부는 닭 사료로 사용하는 대두를 많이 재배하는 지역인데, 가뭄 피해로 대두 수확량이 줄어 사료값이 크게 올랐다. 이 영향으로 국내 양계장 사업자들은 산란닭 500여만 마리를 처분했고, 그 여파로 달걀 가격도 급등했다. 곡물 가격 상승으로 생활 물가 전반이 상승하는 애그플레이션(‘농업’과 ‘물가상승’의 합성어)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곡물 가격이 급등한 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기후변화의 영향도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 세계적 곡물 부족 현상이 예견되자, 인도 정부는 부족한 만큼 곡물을 더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밀 수확을 앞둔 3월 말, 인도는 기온이 50°C 가까이 오르는 폭염과 가뭄을 겪어 밀 수확량이 대폭 줄었다. 예상치 못한 큰 타격에 인도 정부는 돌연 곡물 수출 금지를 선언했다. 인도 내 밀 도매가가 4월 한 달 만에 10.7% 오르고, 식량안보를 위해 인도 정부가 매년 구입하던 밀 구매량이 2021년 4400만 톤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 1800만 톤에 그쳤기 때문이다.

자국민이 굶주릴 수 있는 상황에서 해외로 식량을 수출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따라서 식량이 부족해지면 자국민을 우선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국내 식량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20%까지 하락한 곡물 생산량을 2배로 늘려도 자급률은 40%에 그친다. 국내 생산량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정부는 2007·2008년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자, 수입 의존도가 높은 곡물에 대해 우리 기업의 해외 생산·유통·반입을 지원했다. 2009년부터는 비상시 반입 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해외 농업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국내 기업은 해외 농장과 곡물 수출 터미널의 지분을 통해 좀 더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해외 수입만으로는 해외 국가의 정세 불안이나 가뭄 피해로 인한 수확량 감소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해외 농장이 있어도 해당 국가의 긴급한 수출 제한 조치가 이뤄지면 생산한 식량의 국내 반입이 불가능하다. 곡물 수출 터미널의 지분이 있어도 국제 식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그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수입 유통망을 다변화해도, 공급이 부족해져 가격이 오르면 식자재 무역은 제한된다.

탄소중립 병행하는 기후 위기 대응

최근 물가상승으로 많은 사람이 점점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하나의 원인이 아닌 복합적 원인이 가져온 결과다. 사람들 대부분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고 전쟁이 끝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할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다.

정부와 기업도 이 같은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추가적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기후변화의 원인인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농업 기반을 강화해 자급률을 높이거나 보다 안정적으로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물론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중단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탄소중립의 병행 없이는 장기적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 것이라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에너지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재생에너지 시설을 늘릴수록 해외에서 95% 이상 수입하는 석유와 석탄을 대체할 수 있기에 에너지자원의 수입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탄소배출량을 줄인다고 밀 수확량이 즉각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처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기후 위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배부른 사람들의 환경 걱정’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많다. 탄소중립과 RE100을 비롯해 오늘날 전 세계 국가와 기업이 기후행동에 나서는 이유는 결코 배불러서가 아니다. 배고픈 미래가 올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탄소중립도 결국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