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냄비 속 개구리’라는 표현이 있다. 개구리를 찬물이 들어 있는 냄비에 넣은 뒤 물을 서서히 데우면 뛰쳐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냄비 속 개구리라는 표현의 배경이 된 실험 자체는 허구라고 한다. 2007년 빅터 허친슨 오클라호마대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물 온도를 분당 1.1도씩 올리며 개구리의 행동 변화를 관찰한 결과 온도가 올라갈수록 개구리의 움직임은 점점 활발해졌고, 마침내 탈출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역시 끓는 물속에서 죽을 때까지 버틸 만큼 미련한 동물이 있을 리 없다.

최근 끓는 냄비 속 개구리와 비슷한 죽음을 맞이하는 황당한 사건이 지구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은 개구리 같은 양서류도, 파충류도 아닌 지구상에서 그 어떤 생물보다 높은 지능을 지닌 인간이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럽연합(EU) 산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유럽에서 폭염으로 1만6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올해도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2023년이 관측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속출하는 가운데 인도에서는 최고 45도에 이르는 폭염으로 1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 동남아시아, 스페인 등에서도 유례없는 폭염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에겐 냄비 속 개구리처럼 뜨거움을 피해 뛰쳐나갈 냄비 밖 세상이 없다는 것이다.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냄비 물의 온도를 낮추거나 뜨거워진 물을 견뎌낼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정책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온도 상승을 제한하는 것은 ‘기후변화 완화 정책’, 이미 상승한 지구 온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기후변화 적응 정책’이라고 한다.

○기후 적응, 미룰 수 없는 현실

그동안 대부분 국가의 기후변화 정책은 적응보다 완화에 초점을 둬왔다. 에너지 전환과 산업계의 배출량 감축이라는 정책 목표와 대상이 명확한 완화 정책과 달리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걸쳐 발생하므로 정책 역량을 한곳에 집중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후 적응을 논하는 것이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감축을 포기한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부담도 적응 정책의 추진을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웠던 또 다른 원인으로 생각된다.
유례없는 폭염·폭우…이젠 기업도 '기후변화 적응 대책' 세워야
최근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위기 적응을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이미 닥친 현실이며,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됐기 때문이다. 지구 평균기온은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1.09도 이상 상승했으며, 2021년 공개된 IPCC 제6차 보고서에서는 1.5도 도달 시점을 기존의 2030~2052년에서 10년가량 앞당겨진 2021~2040년으로 예측했다.

아울러 세계 각국이 유엔에 제출한 감축목표를 제대로 이행한다고 가정할 경우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2.4~2.6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폭염뿐 아니라 가뭄, 홍수, 산불 등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과 재난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며, 현재 전 지구적 온실가스 배출 및 감축 추세로는 향후 그 정도와 빈도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제3.5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

2015년 채택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파리협정은 세계 각국에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책무도 요구하고 있다. 적응 역량 강화, 회복력 강화 그리고 기후변화 취약성 경감이라는 전 지구적 목표를 수립하고, 각국은 이와 관련한 국가별 적응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앞선 2010년부터 법정 계획으로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5년 단위로 수립하고 있으며, 시·도 단위의 적응 대책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2021~2025년)이 추진 중이지만, 정부는 지난 6월 13일 작년 집중호우를 계기로 3차 대책을 수정·보완한 ‘제3차 국가 기후 위기 적응 강화 대책(3.5차 대책)’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해외 선진국과 비교할 때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적응 대책을 빠르게 수립·추진했으나, 실제 대책이 제대로 기능하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재원과 인력 확보 방안 없이 여러 영역에 걸쳐 기존 대책을 종합한 형식적 계획에 그쳤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적응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원인을 정부나 지자체에만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사회 모든 영역에서 발생한다. 기후변화 같은 전방위적 위험에 대해 예상되는 피해 당사자의 적극적 참여 없이 정부나 지자체만의 노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체계적인 추진 역량을 갖췄으며,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 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게 기업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마저 기후변화의 물리적 변화에 대한 분석과 대응 정책이 초보 수준에 머무른다는 점은 우리가 그동안 기후 적응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환경부가 발표한 이번 3.5차 대책과 기존 대책의 가장 큰 차이는 ‘모든 주체가 함께하는 기후 적응 추진’이다. 정부는 기존 대책에 더해 이번 3.5차 대책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에 노출된 취약계층에 폭염·한파 등 정보를 직접 전달해 스스로 위험을 회피하도록 하는 방안과 기업·금융기관에 기후 시나리오 등 기후 리스크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높여 대응 역량을 갖춘 집단이 자체 전략을 수립해 이행하도록 하는 방안을 보완했다. 아울러 기후 위기 적응법을 제정해 적응 대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한 법적 기반을 갖추는 방안도 포함했다.

유례없는 폭염·폭우…이젠 기업도 '기후변화 적응 대책' 세워야
기후변화의 영향은 전방위적으로 일어나지만, 정부의 예산은 제한적이다. 한정된 재원으로 정부가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모든 피해를 예방하고 손실을 보상할 수는 없다. 정부는 대응 역량과 자원을 갖춘 주체에는 스스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도록 정보와 가이드를 제공하고, 기후 위험에 노출된 동시에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취약계층의 지원에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 제대로 된 계획의 수립과 이행뿐 아니라 기후변화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당사자의 적극적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기후 위기 적응은 먼 미래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그리고 나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