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이준석' '박지현'이라는 이름의 가능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인천 계양을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지난달 8일. 당장 이 고문과 맞설 상대에 관심이 쏠렸다. 국민의힘에선 전략공천 대상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서너 명의 이름이 거론됐다.

그런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관련 논의를 사실상 차단했다. “계양을에 도전하는 사람은 1년10개월 뒤 22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 대표는 “계양구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을 공천하는 것이 계양 주민에 대한 당의 도리”라며 “꾸준히 도전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아 그간 국민의힘 의석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공천된 윤형선 후보는 이 고문과 기대 이상의 접전을 벌였다. 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민주당 텃밭에 온 거물 정치인과 지역에서 25년간 한우물을 판 무명 정치인의 구도가 부각됐다. 윤 후보가 지지율에서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발표되며 궁지에 몰린 이 고문은 선거기간 내내 계양을에 발이 묶였다. 국민의힘이 수도권 일대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지난달 24일 박지현 당시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6·1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사흘 앞둔 때였다. “당의 성 비위와 내로남불 행태에 대해 사과하고, 586 정치인 용퇴 등을 통해 당을 쇄신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당내 중진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윤호중 전 비대위원장은 회의 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선거를 앞두고 분란을 만들었다.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의심된다”(우상호 의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방선거 참패가 확정된 2일 새벽부터 민주당에서는 초선부터 원로까지 반성문이 쏟아지고 있다. 그 내용은 “대선 패배에도 반성과 쇄신이 부족했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박 전 위원장이 9일 전 했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목소리가 더 빨리 터져 나왔다면 지방선거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지방선거 기간 양당의 젊은 리더들은 기존 정치인의 문법에서 벗어난 주장을 했다. 이는 종종 정치 현실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미숙함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들의 말에는 모두가 알고 있으나 실천하지 못한 원칙과 염치가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의 행보는 선거 승패로 엇갈리게 됐다. 승리한 이 대표는 당내 입지가 부쩍 강화됐다. 반면 박 전 위원장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 청년 정치의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같은 지점에 서 있다. 두 사람은 물론 제2의 이준석, 제2의 박지현이 나와 한국 정치와 정치문화가 달라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