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연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의 90%를 줄이기로 했다. 해상을 통한 러시아산 석유 수입은 즉각 중단한다. 이번 제재로 러시아는 연간 최대 100억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국제유가가 치솟고 유럽이 대체 에너지원을 흡수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러시아산 석유 수입 3분의 2 중단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EU 정상들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러시아산 석유의 해상 수입을 중단하는 대러 6차 제재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유럽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중 해상을 통한 비중은 전체의 3분의 2 수준이다.

미셸 상임의장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전쟁 무기 비용을 조달하는 자금줄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전쟁을 끝내라는 최대한의 압박”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27개 국가가 제재를 공식 도입하면 러시아가 연간 100억달러 규모의 수출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관측했다.

러시아산 석유 수입의 나머지 3분의 1은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육로로 공급된다. 드루즈바 송유관은 벨라루스를 지나 폴란드와 독일,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등으로 이어진다. 이중 독일과 폴란드도 연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중단하기로 해 전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의 90%가 수입 금지 대상이 됐다.

EU 정상들은 이날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를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제외하고 러시아 국영 방송사 세 곳의 수신을 중단하는 데에도 합의했다.

에너지發 인플레 심화되나

유럽의 대러 제재 합의안이 발표되자 국제유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은 31일 장중 123.58달러까지 올랐다. 브렌트유가 120달러선을 넘은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3월 이후 두 달 만이다.

서부텍사스유(WTI) 선물 가격도 119달러를 웃돌았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유럽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선에 근접했던 2008년 수준까지 뛰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이날 네덜란드 천연가스 기업 가스테라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이 루블화 결제 요구에 따르지 않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덴마크 에너지 기업 외르스테드도 같은 요구를 거절했다며 가스프롬의 천연가스 공급이 끊길 수 있다고 발표했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려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면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전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CNN은 유럽이 액화천연가스(LNG)에 눈을 돌리며 2~4월 유럽 LNG 수입량(2820만t)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9% 늘었다고 보도했다.

불똥은 LNG 최대 수입지인 아시아로 튀었다. 지난 27일 동아시아 LNG 현물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14% 급등했다. 사울 카보닉 크레디트스위스 애널리스트는 “유럽이 모든 예비 LNG 물량을 흡수하고 있어 호주가 LNG 수입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