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탄소의 시대'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탄소중립이 국정의 블랙홀이 돼버렸다. 기필코 탄소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10월 28일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처음 등장했던 탄소중립이 새 정부의 대선 공약집에도 41번이나 등장한다.

새 정부가 추구하는 ‘맑고 깨끗한 환경’에 필요한 것이 바로 탄소중립이다. 물론 탄소중립으로 위장했던 비현실적인 탈원전은 폐지하고, 진정한 무탄소 전원으로 경제성·안전성이 검증된 원전은 적극 활용한다. 미래지향적인 신재생에 대한 투자도 강화한다.

국제 사회가 탄소중립에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국제 사회의 탄소중립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만 한다. 유엔이 인정하는 선진국으로 우뚝 선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객을 뒤바꿔서는 안 된다. 기후 위기 극복이 목표이고, 탄소중립은 수단일 뿐이다.

국제 사회가 화려한 잔치판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 우리가 앞장서서 막춤을 추겠다는 생각은 어처구니없는 착각이다. 탄소중립은 현실적으로 절대 만만한 목표일 수가 없다. 우리의 경우에는 2018년 기준으로 2억6050만t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포스코가 배출하는 7312만t의 세 배가 넘는 엄청난 양이다. 상위 20위까지의 기업을 모두 포기해 버려야만 한다. 더욱이 뒤늦은 산업화로 우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여전히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물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2030년 이전에 폐로시키기로 했던 원전 10기의 가동 연한만 연장해도 국제 사회와의 약속 이행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우리의 뛰어난 석탄화력 기술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아직도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저개발국가의 30억 명이 넘는 주민들이 우리의 석탄화력 기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고 전 지구적 현상인 기후 위기가 말끔하게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2018년 기준으로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비중은 고작 1.51%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더라도 지구촌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역사적 책임도 1%를 넘지 않는다.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중국·미국·인도도 탄소중립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일차적으로는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adaptation)’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반도의 아열대화를 무작정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폭설·한파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그 대신 폭우·폭염·가뭄·태풍에 대한 사회적 대비를 위한 투자와 노력과 4대강의 홍수 관리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탄소의 과도한 악마화도 경계해야 한다. 기후 위기를 촉발시킨 것은 탄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절제력을 상실해버린 우리 자신을 탓하는 것이 마땅하다. 50만 년 동안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던 화석연료를 함부로 탓하는 것은 지극히 비겁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어설픈 진단과 엉터리 처방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탄소의 시대’는 쉽게 끝날 수 없는 것이다. 탄소는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탄소 덕분에 존재한다. 유전물질인 DNA·RNA와 생존에 꼭 필요한 탄수화물·지방·단백질·비타민이 모두 탄소의 화합물이다. 심지어 외계 생명체(ET)도 탄소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결론이다.

탄소는 인류 문명을 화려하게 꽃피워주기도 했다. 목재·섬유·종이·화약·플라스틱이 모두 탄소 화합물이고, 심지어 질병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도 대부분 탄소 화합물이다. 단단한 철(鐵)도 탄소 불순물이 들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화학적·물리적으로 가장 화려한 다양성을 가진 탄소에 의해 피어나는 찬란한 ‘탄소문화’가 우리의 미래라는 사실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