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통상조직 개편 논의, 제대로 하기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통상조직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는 서로 그들의 조직에 통상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교부는 외교통상부 시절에 비해 산업통상이었던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9년 동안 통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지난가을 경제를 혼란에 빠뜨렸던 요소수 사태의 책임 소재까지 소환하고 있다. 반면, 산업부는 미·중 경쟁 가속화와 팬데믹으로 부각된 공급망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산업현장과 통상이 연결돼야 한다며 조직 방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어느 부처가 통상교섭 기능을 가질 것인가다. 이는 이론적인 문제가 아닌, 경험적인 문제다. 대선 때마다 정부 조직 개편 문제는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는 5년마다 정부 조직을 떼었다 붙였다 할 수는 없다. 정부 조직은 언제든지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레고가 아니다. 현장의 압박을 견뎌내고, 분열된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현해 낼 수 있는 전문가들의 집단이라야 제대로 된 통상조직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그런 통상조직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미국,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하고 높은 자유화 수준의 협정을 타결시킨 외교통상부에서 굳이 통상조직을 분리하겠다는 것은 2013년 1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였다. 한·미, 한·EU FTA 타결로 한국은 날로 커지는 덩치에 걸맞은 통상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전 세계가 FTA로 경제 기회를 확대하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하려는 시절, 한국은 명실상부한 통상대국으로 부상했다. 멀쩡한 외교통상부를 왜 분리하려는지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다. 외교통상 조직이 국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기에 정치적 혼란을 초래한다는 새로운 집권세력의 생각이 통상조직 개편의 이유일 것으로 추측됐다. 그렇게 시작한 산업통상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최대 통상 현안은 한·중 FTA였다. 협상은 진전되지 않는데 대통령은 타결을 요구했다. 협상의 실질적인 내용보다 모양새에 치중하다 보니 협상은 산으로 갔다. 결과적으로 무늬만 FTA로 귀착됐다. 관세 자유화 협상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중국에 투자한 기업들의 사활이 걸린 투자 협상은 후일로 미뤄야 했다.

현장 전문가의 판단으로는 통상이익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는데, 최고결정권자가 신속 타결을 요구하면 사표를 던질 각오로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할 관료가 있을까. 중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한 한국과 FTA를 체결해야만 그들의 체면이 선다. 그래서 FTA 체결을 재촉했다. 그런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장밋빛 기대는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안보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설치에 중국이 반발하면서 통상보복까지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산업통상을 이어간 문재인 정부는 어떠했나. 투자 협상을 해야 하는 한·중 FTA 2단계 협상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드 관련 ‘3불’을 미리 선언한 한국이 중국에 대해 협상력을 가질 리 만무하다. 투자규범을 무시한 강대국의 일방주의 횡포 앞에 기업을 보호하기는커녕, 기업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책임회피로 일관해 왔다. 통상조직이 국익의 치열함보다 국내 정치에 이끌려 온 산업통상의 현주소는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외교통상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의 산업통상에 대통령의 확고한 리더십을 심어주면 가능할까.

통상조직의 성패는 조직의 전문성과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통상조직은 산업에 대한 전문성, 국제규범에 대한 지식, 교섭 능력을 갖춘 국익에 투철한 관료들로 구성돼야 한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에게도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생각은 접고 그런 의견을 경청할 줄 알아야 통상조직은 제대로 작동한다. 그래야 한국의 통상이익을 제대로 보호하고, 나아가 통상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통상조직 개편 논의가 레고 조립식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