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前 연세대 총장 "경제 지식의 대중화, 경제학자에게 맡겨진 책무죠"
“경제학자로서 국민의 경제 지식 함양을 돕는 건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1년 동안 꾸준히 유튜브 동영상을 찍은 이유죠.”

자극적 내용과 화려한 언변이 대세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운 동영상의 홍수 시대, 와이셔츠를 차려입고 차분한 목소리로 유튜브 동영상을 찍는 전직 대학 총장이 있다. 유튜브 채널 ‘정갑영의 쉬운 경제이야기(정갑영 TV)’를 운영하는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69·사진)이다.

정 전 총장이 경제를 주제로 유튜브 영상을 찍기 시작한 건 지난 1월이다. △금융지식 △경제학 주요 이론 △세계경제 △경제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매주 두 편씩 동영상을 찍어 업로드하고 있다. 자극적 표현도, 화려한 편집도 없지만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입소문을 타면서 어느새 구독자는 1만 명에 육박한다.

주요 대학 ‘총장님’이 이렇게 열심히 유튜브 동영상을 찍는 이유가 뭘까. 정 전 총장은 지난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학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라고 했다. 정 전 총장은 1986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해 지금까지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경제학자다. 그는 “경제에 대한 국민의 평균적인 이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그 나라의 경제가 더 발전하게 된다”며 “국민 전체의 경제 지식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유튜브를 찍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활자보다는 동영상에 익숙한 만큼, 청년층이 올바른 경제 지식을 쌓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민의 경제 지식수준이 어떻게 국가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일까. 정 전 총장은 “국민의 경제 지식수준이 낮으면 정부가 올바른 경제 정책을 펼치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지금 당장 국민의 환심을 끌 만한 경제 정책에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국민마저 경제를 잘 모르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된 경제 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과 견제가 이뤄질 수 없죠.”

정 전 총장은 현재 한국 국민의 평균적인 경제 지식수준을 “빈약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 국민의 금융이해력 수준은 조사 대상 143개국 가운데 77위에 그쳤다. 수십 년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한 미얀마보다 낮은 순위다.

정 전 총장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경제학은 개인의 삶을 위해서나, 기업·기관의 성장을 위해서나,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나 꼭 대중화가 필요한 학문”이라며 “국민이 경제학을 어렵게만 느끼며 멀리했다면, 경제학자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다”고 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옵티머스·라임 펀드 사기 사건도 국민의 경제 지식이 조금만 높았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 전 총장은 “최소한 2~3년은 유튜브 동영상을 찍을 예정”이라면서도 “국민의 경제 지식수준을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중·고교 교육과정에 경제 과목을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정의진/사진=신경훈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