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자본시장법이 논란이 되고 있다. 내용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 여성 이사 한 명을 둬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여성을 차별하는 유리천장(보이지 않는 장벽)을 깨는 긍정적인 시도”라는 평가와 함께 “기업의 경영자율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여성 인력 활용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에 여성 임원·이사 확대가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이미 남성을 앞질렀고, 사회 참여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대로 주요 선진국보다 크게 낮다. 2018년 기준 국내 상장기업 2072곳의 임원 중 여성 비율은 4.0%에 불과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가 낸 보고서에서도 지난해 국내 기업의 이사회 내 여성임원 비율은 3.1%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최근 여성 리더 양성과 여성 임원 발탁에 적극 나서는 모습은 아직 부족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이 단순히 남녀 평등 차원에서 여성 임원을 발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융·복합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분야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다양성 강화가 조직의 창의성과 혁신을 높이고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들이 전공 연령 국적을 뛰어넘어 인재활용 폭을 넓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양성은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프랑스에서도 경쟁력의 주요 요인이다. 프랑스의 핵심 가치인 ‘톨레랑스(관용)’는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는 것으로, ‘다양성(디베르시테)’을 실현하기 위해 확립된 개념이다. 프랑스 기업들이 경영진을 키우고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디베르시테가 중시된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인재와 여성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는 것은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 결정은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정부가 이사회 남녀 구성을 특정 비율로 맞추라고 강제할 일이 아니다. 국내 기업 이사회의 여성 이사 비율이 낮은 것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성 격차의 결과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사 후보가 될 수 있는 여성 인재풀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기업별 특성이나 영업환경을 무시한 채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일률 적용하는 것은 기업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법안 처리 과정도 문제가 많다. 금융위원회와 국회 전문위원조차 “기업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반대의견을 내 권고조항으로 법사위를 통과했는데 본회의에서 의무조항으로 바뀌었다. 더구나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한 조치로 3월 주총에서 ‘이사 선임 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기업 자율성을 확보할 보완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