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왼쪽부터)과 노영민 비서실장, 이호승 경제수석이 지난달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앞두고 얘기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강기정 정무수석.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왼쪽부터)과 노영민 비서실장, 이호승 경제수석이 지난달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앞두고 얘기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강기정 정무수석.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한국 경제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낙관론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현 경제상황에 대한 오진(誤診)과 전망에 대한 오판(誤判)이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져 민간의 경제활력을 더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경기 오판'이 위기감 더 키운다
9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올해 주요 경제지표 수정 전망치와 실제 지표 간 괴리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4.0%로 추정한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은 8월까지 -11.8%(통계청 설비투자지수 기준)로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수출 증가율도 전망치(-5.0%)보다 실제(-9.8%·1~9월)가 훨씬 나빴다. 올해 0.9%로 예상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까지 0.4%에 그쳤다.

경제성장률 역시 정부 예상(2.4~2.5%)에 못 미치는 2% 안팎이 될 것으로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추정하고 있다. 5개 주요 지표 중 정부 전망치(20만 명)를 웃돈 건 취업자 증가폭(25만 명·1~9월)뿐이다. 하지만 민간의 고용이 늘어난 게 아니라 세금으로 만든 ‘27만원짜리 노인 일자리’ 효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정도 오차라면 정부가 경제를 전망한 게 아니라 희망사항을 얘기한 것”(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이란 지적이 나온다.

모든 숫자가 ‘경제위기 가능성’을 가리키지만, 정책당국자들은 “경제위기설은 과장됐다”(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고 일축한다. 수출 투자 소비 등 주요 지표들이 추락한 건 미·중 무역분쟁 등 해외 변수 탓일 뿐 소득주도성장 등 정책 실패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경제계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과 정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정부의 ‘아전인수식 통계 해석’이 경제상황에 대한 오판을 부르고, 부적절한 정책으로 이어져 경기를 망가뜨리는 ‘방아쇠’가 되고 있다고 걱정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경제를 냉정하게 진단했더라면 경기 하강 시점에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노동·환경·공정거래 정책을 일거에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靑 "경기 좋아진다" 아전인수式 통계해석…잘못된 처방만 남발

고용노동부가 매달 발표하는 ‘실업급여 지급액’은 고용상황을 엿볼 수 있는 주요 지표로 꼽힌다. 지급액이 늘어나면 실업자 증가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지급액이 급증하자 고용부의 설명이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실업급여 대상자를 확대한 만큼 ‘지급액 증가=실업자 증가’ 공식이 깨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줄인 덕분에 사회안전망이 강화됐다”는 긍정적인 요소를 부각시켰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실업급여 지급액의 증감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예나 지금이나 경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까지 제조업 분야의 2년간 실업급여 지급자 수는 12.5%로 같은 기간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비율(6.8%)을 두 배 가까이 웃돌았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문재인 정부는 유독 통계의 부정적인 측면은 외면하고 긍정적인 점만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경기 오판'이 위기감 더 키운다
근거없는 낙관론에 아전인수식 지표해석

작년 12월 정부가 내놓은 ‘2019년 경제 전망’이 ‘폐기처분’ 수순에 들어간 건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소비 투자 수출 등 주요 지표가 곤두박질치면서 1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전분기 대비 -0.3%)을 기록한 탓이다. 7개월 뒤 정부가 낸 수정 전망치의 ‘유효기간’도 짧았다. 경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면 정책실패 논란이 생길지 모른다는 점에서 정부가 낮은 줄 알면서도 높게 잡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정부 전망이 ‘장밋빛’이었다는 건 숫자가 말해준다. △수출증가율은 3.1%(작년 12월 전망치)→-5.0%(올 7월 수정치)→-9.8%(올 1~9월 실적치) △설비투자증가율은 1.0%→-4.0%→-11.8%(1~8월) △물가상승률은 1.6%→0.9%→0.4% △경제성장률은 2.6~2.7%→2.4~2.5%→2% 안팎으로 추락 중이다.

“어떻게 이런 수치를 전망이라고 내놨는지 황당할 따름”(이인실 서강대 경영대학원 교수)이란 비판이 쏟아지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결국 지난 2일 “수정 성장률 전망치(2.4~2.5%) 달성도 어렵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성장률이 예상을 밑돈 원인은 언제나 그랬듯이 미·중 무역갈등 등 외부 변수로 돌렸다. 경기 하강국면에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린 ‘실책’은 쏙 뺐다. 누군가 경제 위기론을 꺼내들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고 공격했다.

정책실패 비판에 대응하는 또 다른 기법은 ‘통계를 읽는 법’에서 찾았다. ‘경제 허리’인 30~40대의 일자리가 줄었다는 비판이 나오면 “노인 일자리 확대로 전체 고용은 개선됐다”며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주장한다. 나쁜 지표가 나올 때마다 “조금 더 기다리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했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대사)의 ‘희망고문’은 이 수석이 이어받았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낮을 것이란 국내외 연구기관의 전망치가 잇따라 나오자 이 수석은 “내년부터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정부의 경제진단은 단발성 오류를 넘어 체계적 오류에 가깝다”며 “정부 정책이 신뢰를 잃게 되면 정책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진이 ‘뒷북 대책’ 불렀다

문제는 경제 상황에 대한 오진이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경기는 2017년 9월을 정점으로 2년 넘게 하강 중이지만 정부는 올 4월 처음으로 ‘경기 부진’ 진단을 내렸다. 그 사이 정부는 최저임금 2년간 29%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법인세율·소득세율 인상 등 경제 주름살을 깊게 하는 정책을 한꺼번에 밀어붙였다. 완만했던 내리막길을 급경사로 바꾼 셈이다.

유 교수는 “정책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 속에 통계를 원하는 방향으로만 바라보는 확증편향이 정부 전반에 심해지고 있다”며 “정책 모순이 확대되면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나타나 치유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상헌/노경목/성수영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