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경제의 ICT화, 통념의 벽을 깨자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밀려온다. 발목을 적시는 작은 파도라면 두어 걸음 물러서거나 작은 모래 둑을 쌓을 것이다. 생존과 생활의 방식을 뒤엎을 거대 해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 높이 둑쌓기’는 시간도 효율도 떨어진다. 그보다는 물살을 넘을 배를 만들고 생존의 항로를 찾아야 한다. 기존 항구는 차제에 더 새롭게 재건하자. 이왕 배를 탄 김에 밀려드는 물결을 추동력 삼아 더 너른 세계로 나아가자. 아마도 이게 변화의 시대가 요구하는 정답일 듯싶다.

농업, 산업화, 정보화로 이어진 기술발전은 인류의 삶과 경제에 새로운 경계를 열며 법제도, 산업, 관습 등 기존 질서와 생태계를 뒤바꾸는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를 불러왔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사회나 국가는 경쟁에서 도태되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미래 인터넷이 촉발한 ‘제4의 산업혁명’으로 지금의 세계 또한 산업구조와 경제체질, 관습과 통념을 송두리째 바꾸는 질서재편 요구에 직면해 있다. 영국, 중국, 인도 등이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것은 기존의 하드웨어 중심 경제패러다임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일찍부터 ‘창조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개인과 기업,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경제저력 강화전략을 추진했다. 안타깝게도 ‘창조’라는 단어의 표의적 의미에 매몰됨으로써 ‘창조를 위한 창조’ 딜레마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한번쯤 살펴볼 때가 된 것 같다. 창조경제가 새로운 성장패러다임의 근간으로 녹아들고 의식과 행동의 플랫폼으로서 안착되지 않은 채, 물리적 공간의 타이틀이나 정책브랜드로 소모되며 가시적 성과를 갈급해할수록 ICT 기반의 미래성장 패러다임으로서 갖는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창조경제의 구현은 트렌디한 첨단기술을 활용해 1차적인 서비스를 구현하거나 스타트업 숫자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ICT 기반의 미래시대가 규제와 장벽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 창의와 혁신이 장애 없이 꽃피우도록 생태환경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지금껏 ICT 접목을 통해 기존 산업과 인프라의 발전을 꾀하는 ‘ICT의 경제화’에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경제의 체질을 보다 스마트하게 혁신하는 ‘경제의 ICT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익숙한 기존의 틀과 관습의 칸막이가 새 시대로의 이행을 가로막지는 않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물인터넷(IoT), 디지털 헬스케어, 핀테크(금융+기술) 등 이종산업 간 결합과 상생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신산업의 특성이 법제도와 정책에 기민하게 반영되는지, 융합 환경으로 복잡다기한 행정수요가 ‘땜질식’으로 처리되지는 않는지, 세계 ICT 시장의 트렌드와 달리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 산업구조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 통념을 뒤집는 시각이 필요하다. 산업과 개인도 종래의 관점에서 ICT 시대를 맞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생명과 안보를 위협하는 보안문제가 여전히 안전 불감증과 책임전가의 악습을 반복하며 외면된다면 우리는 미래 인터넷시대로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뒤처지고 말 것이다.

‘이상하자’는 어느 기업의 광고카피가 귓전을 맴돈다. 언뜻 듣기에 무슨 소린지 다소 이상하다. 하지만 어색함을 지나 만나게 되는 속뜻이 ‘익숙함의 창조적 파괴’가 절실한 우리 시대를 비추는 것 같아 강렬하게 뇌리를 파고든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앞서 나가기 위해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고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이상하기’가 더 늦춰져서는 안 될 것이다.

백기승 < 한국인터넷진흥원장 ksbaik@kis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