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남의 돈으로 돈 벌겠다는 '갭투자'
2013년 하반기 수도권 집값이 반등을 시작한 이후 새로운 아파트 투자 기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여러 채 사 모으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지인 중에는 20채 가까이 산 이도 있다.

이들의 매입 타깃은 전셋값과 매매값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아파트다. 전셋값에 떠밀려 매매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까닭이다. 적은 돈을 투자해 최대한 많은 아파트를 사들이는 게 이들의 목표다. 이를 위해 집을 매입한 뒤 전세 보증금을 대폭 올려 시장에 내놓는다. 그래도 먹힌다. 전세 물건이 워낙 귀해서다. 이런 방법으로 500만~2000만원밖에 들이지 않고 아파트를 샀다는 ‘무용담’이 투자 카페에 넘쳐난다. 이자 부담이 없는 남의 돈(전세 보증금)으로 투자하는 셈이다.

매매-전셋값 차 작은 집 공략

이런 투자 행태는 ‘갭(gap)투자’ ‘무피투자’ 등으로 불린다. 갭투자는 전세 보증금과 매매값의 차이가 작은 아파트를 공략하는 데서 유래했다. 무피투자는 피 같은 내 돈을 들이지 않고 매입한다는 뜻에서 붙은 은어다. 갭투자의 원조는 부산 투자자들이다. 2009~2011년 부산 아파트값이 급등할 때 갭투자를 한 이들이 짭짤한 돈을 벌었다. 그 뒤를 이어 집값이 뛴 울산 대구 등에서도 갭투자자가 많이 생겨났다.

갭투자자들은 2013년부터 수도권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방 부동산시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해서다. 수도권 집값이 바닥이던 2012년 외지인이 매입한 서울 아파트는 7287채였지만 작년 이 숫자는 1만4657채로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만1572채를 외지인이 사들였다. 지금까지만 보면 갭투자는 성공적이다. 2013년 이후 수도권 아파트값은 적게는 2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2억원까지 반등했다.

먼저 투자에 나섰던 이들의 성적표가 좋다 보니 수도권 추종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성공사례로 꼽히는 몇몇은 스타 강사로 발돋움했다. 백화점 투자카페 등에서 이들이 하는 강의는 공지 5분 이내에 마감된다. 갭투자 노하우와 경험담을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잃지 않는 것도 버는 것

스타 강사들이 감에 의존해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 대부분은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던 직장인, 엑셀 파워포인트 등 PC 활용에 능수능란한 고학력자들이다. 기술적 분석 능력은 증권사 직원 뺨친다. 아파트값과 전셋값 변동률 추이, 거래량 증감 추이, 전세가율, 입주 물량 등 기술적 지표를 분석해 투자 시기와 투자 지역을 선별한다.

사실 갭투자는 2000년대 중·후반 뉴타운·재개발이 왕성할 때도 유행했다. 당시는 주로 반지하주택, 노후 다세대주택 등이 투자 대상이었다. 재개발이 진행돼 집값이 크게 오르는 것을 노렸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뉴타운·재개발이 대거 중단되면서 집값이 크게 떨어져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 여러 채를 사 모았던 투자자가 자살했다는 뉴스마저 나왔다.

전세를 낀 투자도 리스크는 있다. 예상과 달리 전셋값이 떨어지면 위험이 커진다. 갭투자에 관심이 있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투자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빨리 가기 위해 과속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천천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장은 항상 인간의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에 그렇다. 게다가 준비된 투자자에겐 항상 새로운 투자 기회가 온다.

조성근 건설부동산부 차장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