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FTA 청원, 뒷북 치는 판사들
여러 의견이 있다. “판사가 3권 분립 기본 원칙을 무시했다는 부끄러운 과거로 남을 것”이라는 격한 반대부터 “판사가 사회적 관심사를 도외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온건한 옹호론까지 다양하다. 게시판에서도 3권 분립 원칙상 법원이 행정부의 영역인 FTA 재협상에 나설 권한이 있는지 여부를 두고 판사들이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냈고, 어떤 판사는 “장기적으로 법령 연구실을 구성해야 한다”며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김 부장판사는 처음에는 게시물 제목을 ‘재협상 청원’으로 했다가 나중에 ‘연구 TF 청원’으로 바꿨다. 판사들의 찬성 댓글도 대개 재협상 요구보다는 ‘연구 필요성’에 찬성하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들의 ‘연구 촉구’와 행정부 정책에 대한 ‘재협상 청원’은 차이가 크다. 한·미 FTA를 둘러싸고 정치적 대립이 격화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논의를 그가 처음 제안했을 때, 그리고 그 제안에 찬성이 이어졌을 때 이런 ‘후폭풍’까지 내다봤는지 의문이다. 한·미 FTA가 체결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하다가 지금에 와서야 3권 분립 원칙을 어길 위험을 무릅쓰는지, 그동안은 왜 문제 제기가 없었는지 하는 의문을 법조계 안에서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법원의 2009년 결정은 2년 만에 벌어진 지금의 논란에서도 유효해 보인다. ‘판사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적 관심사항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표명하는 경우에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절제되고 균형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판사의 사회적 영향력과 지위에 비춰볼 때 특정 사안에 대한 판사의 의견은 사견이라고 해도 진실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오도(誤導)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당시 한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에 대해 험담했다 징계당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이고운 지식사회부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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