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성원건설 회사채 판결 파장
“성원건설 회사채 판결의 사건번호나 담당 변호사를 알 수 있을까요. 이번 판결에 힘입어 소송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부실 회사채 투자손실 관련 주관사가 60%를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을 다룬 지난 21일자 본지 보도 이후 개인 투자자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기업의 부실징후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권회사에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린 첫 판결이었다.

증권업계도 술렁였다. 개인 투자자들의 줄 소송이 뻔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고의로 부실징후를 감췄는데도 증권사에만 과중한 책임을 지웠다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적시된 ‘부실징후’는 본사 경매, 임금 체불, 해외공사 차질 등이다. 기업이 작정하고 숨긴다면 증권사로서는 찾아내기 쉽지 않은 문제들인 것도 사실이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부실기업 회사채 발행을 주관한 증권사에 다른 국내외 증권사까지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묻는 등 소송이 확산될 조짐이다. 이번 판결이 대한해운 LIG건설 등 유사 소송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회사채 시장의 소송 봇물은 예견된 결과였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일부 증권사가 회사채 리테일(소매) 판매로 짭짤한 수익을 거두자 증권사들이 앞다퉈 달려들었다. 저금리 기조에서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개인 투자자들도 비우량 등급 채권에 눈을 돌렸다. 증권사 간 물량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철저한 기업실사는 뒷전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라리 비우량 등급 채권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증권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대형 증권사 한 곳은 BBB급 이하 회사채 관련 업무를 하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세웠다. 채권 인수실적 쌓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또 다른 증권사도 신용이 낮은 기업은 인수대상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부실 위험을 예측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비우량 등급 채권의 발행 및 중개 기능이 위축되면 중소·중견기업의 자금조달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상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성장성이 충분한 기업의 자금줄까지 조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눈 앞의 실리만 좇던 증권사와 당장 자금만 확보하면 된다는 일부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건전한 중소·중견 기업을 자본시장에서 내모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김은정 증권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