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규제행정 사라지지 않는 이유
“잘해봐야 본전이고 잘못되면 ‘나락’입니다. 그러니 누가 나서서 규제를 풀려고 하겠습니까.”

본지가 지난달 28일부터 5일간 기획 보도한 ‘전봇대는 살아있다’ 시리즈를 본 한 공무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본지는 기업들이 불합리한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을 제시하며 규제개혁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와 공급자 중심의 발상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공무원들은 “불합리한 규제들이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대표적인 예가 고층건물에 설치돼 있는 ‘완강기’다. 완강기는 화재가 났을 때 창문에 줄을 매달아 내려올 수 있게 한 장치로 군대의 ‘레펠’(줄을 타고 건물이나 헬리콥터에서 하강하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사실 훈련받은 군인이 아닌 일반인이 고층에서 완강기를 이용해 내려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최근 다른 탈출 시스템이 개발돼 굳이 완강기가 필요없다.

하지만 여전히 고층건물을 지을 때 완강기는 ‘필수’다. 관련 공무원은 “극히 낮은 확률이지만 완강기가 없어 사람이 다친다면 감사 등을 통해 우리만 뭇매를 맞는다”며 “굳이 규제를 없앨 이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결국 완강기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들의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규제개혁에 대한 공무원 포상제도 실시를 권한다. 공무원이 규제를 완화하거나 없앨 경우 그로 인해 기업이 실제로 혜택을 입었는지를 평가한 뒤, 결과가 좋으면 해당 공무원에게 상을 주자는 것이다. 현재 국무총리실에서 매년 규제개혁 우수공무원을 선발해 표창하고 있지만, 10명도 안 되는 데다 경제적 혜택도 없다. 열심히 일하다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실수를 했을 때 징계를 면하게 하는 ‘적극행정면책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미국은 감사원(GAO)의 명칭을 ‘government audit(회계감사) office’에서 ‘audit’ 대신에 ‘accountability’(책무성)로 바꿨다. 단순히 감사만 하는 게 아니라 잘못하면 처벌하고, 잘하면 포상하겠다는 취지다. 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 내내 공무원들이 일할 맛 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규제개혁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윤선 정치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