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급 원자재를 얻기 위해 괜찮은 공급처엔 직접 돌아다니며 홍보도 하고,검수직원들은 불량품을 걸러내고 하나라도 더 좋은 부품을 모으려 노심초사한다. 그런데 이렇게 모아놓은 원자재와 부품을 이용해 상품을 만들어 놓고는 출고검사없이 완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면 이해가 될까.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우리 대학 교육이다.

대입수능이 끝났다. 입시(入試)라는 말은 대학이라는 관문에 들어가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다. 학생을 보내는 고교 입장에서는 출시(出試)이다. 그 때까지의 완성품에 대한 평가의 의미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대학 졸업생들에 대해서는 각 대학을 초월해 사회적으로 공감할 만한 어떤 객관적 평가도 하지 않는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 중 하나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타성에 젖은 우리 대학들과 사회의 암묵적 공모 속에 대학에 대한 신뢰는 날로 떨어지고 있다. 한 취업 관련 회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입사원을 뽑을 때 대학 시절의 학점을 반영하는 비율이 50% 이상인 회사는 약 15%에 불과하다고 한다. 소위'SKY'로 불리는 대학들이 전공과목에서 40~50% 가까이 A학점을 주는 것으로 알려지고,심지어 수강생의 90.5%가 B학점 이상을 받은 대학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현실에서 대학의 학점은 객관적 지표로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학생의 성취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인재 소비자인 기업 등이 기댈 일차적 판단 기준은 결국 평판에 따른 학벌이고,한번의 입시(入試)는 대학의 출시(出試) 기능을 겸하면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겐 인생의 족쇄가 된다. 실제로 취업시장 곳곳에서는 세칭 비명문대 출신이라 서류 심사에서 걸러지고 면접 한번 볼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니 또 하나의 중요한 간판인 외모에서의 경쟁력이나마 보완해 보려고 젊은이들이 성형수술에 집착하는 기현상도 빚어진다. 내실에 대한 객관적 평가의 부재가 껍질 문화를 부추기고,개인에게는 취업스펙준비를,기업들에는 인력재교육을 위한 비용의 추가 지출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현실은 중 · 고교 공교육의 문제가 아닌 한국 대학의 존립기반과 경쟁력에 큰 위기가 닥쳐올 것임을 암시한다. 올해 서울지역 고교 출신의 해외대학 진학자가 622명이었고 그 중 348명이 외고나 특목고 출신이 아닌 일반고교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대학 경쟁력은 몇몇 외적인 지표만 갖춘다고 향상되지 않는다. 대학이 키워낸 학생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없는 한,대학의 규모,재정,교수의 수,취업률 등 일정한 인프라로 서열을 매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학 졸업자들에게는 전국적으로 공통 전공별로 졸업인증시험을 보도록 하고 합격생에 한해 졸업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 인증시험은 영어와 취업 관련 과목으로 몰리는 대학의 비정상적 쏠림현상을 바로잡고,대학 교육의 질이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한 대학경쟁력 평가의 척도가 될 것이다.

한편으론 엄격하면서 신뢰할 만한 졸업인증시험제도는 대졸자들의 실력을 담보함으로써 대학의 서열화 과잉에 따른 착시현상과 입시 과열을 해소하고,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보다 용이하게 양질의 재목들을 고르고 재교육 투자 비용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학생들의 실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더 이상 우리만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얼마 전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최 '세계대학총장포럼'에서 2012년부터 전 세계 대학생의 학업성취도에 관한 국제평가(AHERO)를 준비하고 있다는 바버라 이싱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국장의 발언은 어떤 형태로건 대학에서 키워내는 인재들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한 현실임을 보여준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인재들에 대한 완제품 검사는 사회의 권리요,대학의 의무라는 글로벌 차원에서의 함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젠 입시(入試)만큼이나 출시(出試)에도 정책적 관심을 쏟을 때다.

이호선 < 국민대 교수·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