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부실 은행 국유화 논란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이다. 도드 위원장은 지난 20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단기간의 은행 국유화 조치가 단행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이를 원치 않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을 보고 있다"면서 "최소한 단기간이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는 것으로 논의가 종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민간 주도로 금융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국유화 가능성을 배제했다.

국유화 발언 영향으로 지난 주말 씨티그룹 주가는 1.95달러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보다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으며,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주가도 사상 최저치인 3.79달러까지 하락했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이번 주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의 세부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커지는 국유화 압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된 지 오래며,백악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국유화 관측은 누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무려 1000억달러의 자금이 이들 두 초대형 은행에 투입됐지만 대출은 개선되지 않고 있고 주가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조사기관인 퓨전 IQ의 배리 리솔츠 자산조사국장은 "국유화를 선호하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다"면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뿐 아니라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과 같은 사람이 그들 속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지난 10일 금융안정화대책 발표 당시 최소한 100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갖고 있는 모든 미국 은행들은 이른바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만일 이 테스트에서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결정나면 정부는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 매입을 통해 자금을 투입하게 될 것이며,이는 곧바로 국유화로의 진행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최근 "정부가 은행을 소유하면 은행 미래가 불확실해져 거래를 꺼리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고 국유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백악관 경제팀도 가능하면 국유화를 피하면서 은행시스템을 정상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뱅크런' 발생 여부가 관건

가이트너 장관이 내놓을 금융시장 안정화 세부 계획엔 △'스트레스 테스트'의 기준 및 테스트 결과에 따른 조치 △민관합동펀드 조성 계획 △부실 자산 가격 산정 방식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난 10일 대형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계획을 발표한 것은 경기 침체로 은행들의 부실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할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은행의 계속되는 주가 폭락이 오바마 행정부에 부담을 주고 있지만 은행의 아킬레스건은 결국 '예금'이라고 지적했다.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뱅크런)하기 시작하면 위기가 확산되고,즉각 정부가 개입해 국유화 등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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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

은행이 파산 위험 없이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도입한 일종의 자산 평가 방식이다. 부동산 가격이 더 하락하고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 은행 자산의 부실이 커진다. 이를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따져본 뒤 구제금융 투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