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당위 같지만 기업을 옥죄는 '비단에 싸인 칼'이 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기업에 방점을 찍는다.

통상적으로 좌파적 가치에 기초해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고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강조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이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가지려면,기업 이외의 여타 경제주체에게도 같은 차원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돼야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시민단체,종교집단,정치권력 등의 사회적 책임은 낯설기만 하다.

기업의 사회적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은 이유다.

삼성그룹은 특검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삼성은 경영권 불법승계,비자금 조성 및 정ㆍ관계 로비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악(惡)의 화신'이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특검과 관련해 '불편한 진실'이 있다.

특검법 발의의 모태는 지난 대선 당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서 비롯된 '반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이다.

'삼성의혹'을 지렛대로 충분한 연결고리 없이 한나라당과 싸잡아 선거판을 '부패ㆍ반부패' 구도로 몰아감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 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제물(祭物)이었다.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업으로 추락했다.

김 변호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총선을 앞두고 '삼성떡값 명단'을 추가로 폭로했다.

잘못된 것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하지만,정치적 필요에 따라 비리의혹을 곶감 뽑듯이 폭로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정의(正義)는 지향해야 할 '가치'이지 '도구'일 수는 없다.

폭로하는 쪽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

삼성은 거악(巨惡)인가? 그렇다면 '악의 덩어리'가 어떻게 세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기업은 제도적 환경에 적응하는 학습조직이다.

따라서 기업을 둘러싼 국내의 제도적 환경이 삼성을 '거악'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흔히들 '가업(家業)을 잇는다'고 한다.

재벌의 경영권 승계도 가업을 잇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크기의 차이'가 '사회적 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경영권 승계는 그 기업이 '계속기업'으로 성공해 왔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락같이 높은 상속세율을 적용해 대물림을 막는 것은 '성공한 기업'을 처벌하는 것이다.

'전문경영'체제로의 전환을 강제하는 것이다.

법망을 피해가지 않고서 경영권 상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영권 승계는 '금지된 허용'이 아닐 수 없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또 다른 이슈는 '자질론'이다.

부모 잘 만난 이유만으로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도 없이,피붙이에게 '맹목적으로 승계'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설령 맹목적 승계라 하더라도 주주가 아닌 제3자가 관여할 이유는 없다.

승계의 성공 여부는 '비인격적' 시장이 판정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창업자 등의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개별금융업법과 공정거래법 등은 금융계열사의 자산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규제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한 출자규제로 기업의 운신의 폭은 더욱 제한된다.

경영권을 방어하기가 여의치 않다.

자사주를 보유하거나 비상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재산권을 지키는 제도적 환경은 매우 척박하다.

규칙을 따르느니 삼성에 맞게 규칙을 바꾼다는 '삼성공화국론'은 과장이다.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셈이다.

도리어 세계를 무대로 뛰어온 글로벌 기업에 세계표준과는 거리가 먼 한국의 규제 체계를 강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고래를 연못에 가두고 고문을 가한 건 아니었는지" 역지사지(易地思之)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삼성도 이번 특검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멈춘 삼성의 경영시계를 다시 뛰게 해야 한다.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