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론에는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A rolling loan gathers no loss)"

최첨단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월가의 금융전문가들이 속담에 빗대 많이 하는 얘기다. 하지만 이 논거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틀린 얘기로 드러났다.

미국 모기지 회사들이 주택 대출을 기초로 모기지담보증권(MBS)을 만들면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이를 대량으로 사들여 다시 파생상품을 만들었다.이렇게 만들어진 부채담보부증권(CDO)은 주택경기가 꺾이면서 급속히 부실화됐다.

단기에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자체의 특성과 단기 수익에 급급하던 월가 금융사 최고경영인들의 도덕적 해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CDO시장은 급팽창했다.금융사들은 CDO를 인수하는 순간 발행액의 1%가량을 수수료로 챙겼다.심지어 한 번 거래로 수억달러를 벌기도 했다.부동산 시장만 괜찮다면이야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기였다.

거짓 명제를 맹신한 월가 최고경영자들 입장에서는 투자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경쟁사들이 무더기 수익을 챙겨가는 것을 두 눈 뜨고 바라볼 수만 없는 노릇이었다.신용평가사들이 높은 등급을 제시하는 만큼 어차피 위험은 한참 뒤의 일이다.이렇게 움튼 도덕적 해이는 월가를 넘어 유럽 호주까지 독버섯처럼 퍼져나갔고 이윽고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기에 이르렀다.

최근 대규모 상각으로 서브프라임 공포를 다시 일으킨 메릴린치와 씨티그룹은 지난 3년 동안 가장 많은 CDO를 인수한 곳이다.최고경영자인 스탠리 오닐과 찰스 프린스는 부실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지만 각각 1억6000만달러,2950만달러 규모의 보수를 확보했다고 한다.장기 경영실적이 최악의 상황을 맞아도 단기 실적만 좋으면 거액을 받는 보수체계가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킨 것이다.

실력이 달려서 큰 화(禍)는 면했지만 한국 금융사들도 단기 실적 중심이긴 마찬가지다.금융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이 짧다보니 단기간에 실력을 보여주려고 온갖 무리수를 둔다.은행장들은 미래 수익사업을 발굴하고 인재를 양성하기보다 당장 은행원들을 돈벌이에 내몰기 예사다.부동산 담보대출 등의 영업쏠림현상이 빚어진 이유이다.

일부 보험사는 주식 편입 비율을 한껏 높인 변액연금상품을 연금 지급시 원금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팔고 있다.쉽게 외형을 늘릴 수 있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파산위험에 놓인다.

자산만 늘리면 절로 수익이 나고 부동산과 주가는 오른다는 맹신이 없으면 반복하기 어려운 경영행태다.부동산 맹신은 저축은행들로 하여금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몰빵'하도록 했다.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꺾이자 저축은행은 시련의 세월을 맞고 있다.

뭐든 맹신하면 스스로 덫에 빠지게 된다.같은 이유에서 금융CEO가 단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해당 금융사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골드만삭스가 서브프라임 타격을 별로 받지 않은 것은 장기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안목으로 맹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덕이었다.

이익원 경제부 차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