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뉴어(정년보장제 교수) 심사에서 후보의 절반 가까이나 탈락시켰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이번에는 한 외국인 여교수의 아이디어로 '작지만 큰' 개혁을 하게 됐다,

지난달 미국 MIT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조교수로 채용된 메리 톰슨 교수(27).그는 지난 10월1일 임용 이후 한 달 보름간 한국 생활에서 느낀 불편을 건의서로 만들어 KAIST 장순흥 교학부총장에게 최근 냈다.

톰슨 교수는 A4용지 9장이나 되는 장문의 건의에서 교수임용 신청절차와 면접,비자,쇼핑,금융 및 강의 내용 등 생활전반에서 겪은 불편함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는 "일본에 가면 식당 메뉴를 사진으로 만들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의사 소통이 되는데 KAIST 인근 동네 식당에서는 메뉴를 몰라 주문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또 "외국인 방문객이 어디서 쇼핑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고 처음 교수 숙소에 왔을 때 가전제품과 인터넷 사용문제 등을 몰라 불편이 컸다"며 "(외국 대학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생활정보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생활불편 내용 말고도 교수임용 과정에서 공식적인 절차와 연락이 허술해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KAIST는 63명의 외국인 교수를 포함,339명의 외국인이 생활할 정도로 다른 어느 대학보다 외국인에 개방됐다고 자부하던 터에 톰슨 교수의 지적은 의외였다.

KAIST는 즉각 건의문까지 공개하면서 개선책을 내놓았다.

당장 학교에서 인근 유성구청까지 1㎞가량 지역을 학내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인터내셔널 존(국제화지역)'으로 꾸미기로 했다.

이 지역의 약국,병원,주점,편의점,제과점 등 각종 가게와 편의시설의 간판에 한글과 영어를 병기하고 식단 메뉴판에도 영어를 함께 적는 캠페인을 벌인다는 것.

한국거주 외국인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한 벽안 여교수의 지적을 계기로 외국인에게 우리 고유문화를 강요하며 소홀히 한 것은 없는 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오춘호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