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容雲 < 보험개발원 산업연구팀장 >

정부는 시장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할 경우 소비자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시장에 간섭하게 된다.

이렇게 가격을 통제하면 소비자들은 수요를 증가시키지만 역으로 공급자들은 생산을 축소하거나 중단하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수요를 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이 정부가 원하던 바는 아닐 것이다.

만약 정부가 가격을 통제한 상태에서 공급을 통제 이전(以前)의 수준으로 유지시키고 싶다면 생산자들이 통제가격으로도 계속 공급이 가능하도록 생산요소 가격을 낮추는 또 하나의 다른 통제정책을 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생산요소 공급자들은 요소를 다른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투입하여 해당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은 늘어나지 않게 된다.

결국 통제는 또 다른 통제를 부르게 되지만 의도한 효과는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의료서비스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의료 공급자는 소비자와의 정보 비대칭성(非對稱性)을 이용해 진료를 과도하게 하고 진료비를 과도하게 부과(賦課)하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의학적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대등한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적정한 진료를 하고 적정한 진료비를 부과하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은 의료 공급자에 의해서 주로 결정되는 시장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판단 아래 의료서비스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서 가격을 설정해 놓고 그 가격으로 진료비를 지불하고 있다.

이것이 소위 행위당 수가제인데 전형적인 가격통제에 해당한다.

그 통제된 가격으로 의료 공급자에게 지불하는 의료비의 재원(財源)은 소비자들의 보험료로 충당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결국 통제된 가격으로 의료서비스를 과잉 이용한다.

의료공급자들은 통제된 여러 의료서비스 항목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다고 생각되는 항목은 공급을 줄이거나 중단하려고 하지만 도덕적 혹은 법적인 이유로 공급을 중단할 수 없다면 환자당 진료시간을 줄인다든지,저급(低級) 의약품을 사용한다든지 할 것이므로 의료서비스의 질적인 하락을 초래하게 된다.

또한 성형수술과 같이 가격통제를 하지 않은 의료서비스 부분에 공급을 증가시키거나 질적인 향상을 추구하는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환자가 의료서비스를 받고 지불하는 본인부담의료비는 법정본인부담의료비와 비급여본인부담의료비로 나누어진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의료서비스 항목이라 하더라도 일정 비율을 환자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데 이것을 법정 본인부담의료비라 하고,보장하지 않는 항목에 대해서는 환자가 전액 지불하여야 하는데 이를 비급여 본인부담 의료비라고 한다.

법정 본인부담의료비를 부담하게 하는 이유는 환자들이 과도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가격통제에 의해서 이미 과잉의료 이용은 발생하고 이것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압박하고 있어서 조세(租稅)의 지원 등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결성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법정 본인부담 의료비를 민영 의료보험이 보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는 소비자에 대한 보장성을 낮추기까지 하면서 또 다른 산업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법정 본인부담의료비는 의료서비스의 과잉 이용을 줄이기 위함인데 민영의료보험이 이를 보장하면 그 효과가 없어져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이 이유이다.

아직도 그 영향에 대한 실증적 증거는 없어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민영의료보험도 본인부담의료비를 설정해 놓고 있고,해외에서도 그러한 제한을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이와 같은 2차적인 통제는 소비자의 보장성 확대나 의료산업 발전이 목적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안정화가 주요 목적이어서 재고(再考)되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가격통제에 의해서 발생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적 문제를 또 하나의 통제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