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라크 정상 안정화 방안 논의..저항세력은 방해 공작

이라크 상황이 급변할 조짐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29∼30일 요르단 암만에서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회동, 내전에 직면한 이라크의 안정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인 가운데 당사국인 이라크와 주변국 간의 외교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집권층이었던 수니파 저항세력은 본격적인 방해공작에 돌입했다.

이라크에서는 미군 전투기가 추락하고 저항공격이 이어지는 혼미한 상황이 지속됐으며,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해 놓은 미국 동맹국들은 이라크 탈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라크 문제 해결 위한 정상외교 `불꽃' = 부시 대통령과 말리키 총리의 암만 회담은 미국 중간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이 패배한 뒤 새로운 이라크 전략을 수립하라는 미국 내의 여론이 고조하는 상황에서 열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이라크 전략을 수정하는 계기로 삼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암만 회담이 4년 가까이 끌어온 이라크 사태의 향방을 가름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말리키 총리의 회동을 앞두고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은 27일 취임 후 4번째 이란 방문길에 올랐다.

시아파 주류 국가인 이란은 수니파와의 유혈분쟁을 주도하는 시아파 민병조직을 지원해 종파 분쟁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다.

탈라바니 대통령은 이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라크 안정화를 위한 이란의 협조를 약속받았다.

탈라바니 대통령은 "이라크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이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란 정부는 이라크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특히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안정되고 발전한 힘 있는 이라크가 이란과 주변 지역에도 이익이 된다고 믿는다"고 말해 자국이 시아파 일부 세력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방법으로 이라크의 안정을 깨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반박했다.

탈라바니 대통령은 28일에는 이란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를 예방해 이라크 안정화 방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부시 대통령과 말리키 총리의 암만 회담을 주관할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도 이라크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외교에 나섰다.

최근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압둘라 국왕은 이날 자국에 머물고 있는 이라크 수니파 지도자인 하리스 알-다리를 이례적으로 만나 수니파와 시아파가 화합해 종파 간의 폭력사태를 끝내는 일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다.

이라크의 수니파 최고 기구인 무슬림학자연합을 이끌고 있는 알-다리는 저항테러를 선동한 혐의로 이라크 당국의 수배를 받게 되자 5개월 전 요르단으로 도피했다.

요르단 정부는 압둘라 국왕은 이라크 수니파와 시아파가 견해 차를 좁히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목적에서 알-다리를 만났다고 밝혀 이 접촉이 부시 대통령의 암만 방문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했다.

◇수니파 저항세력은 안정화 방해 공작 = 이라크 안정화 전략을 다시 수립하려는 미국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세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27일 미국 및 이라크 시아파 정권과의 화해를 거부하라고 수니파에 촉구하고 나섰다.

후세인 정권 시절 집권당이었던 바트당 인사 2명은 시리아에서 AP 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 전 부통령이 저항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이지 말라는 강력한 지시를 추종자들에게 내렸다고 주장했다.

후세인의 오른팔로 불리는 알-두리는 미군이 중요 수배자로 분류한 후세인 정권 인사 55명 가운데 6위에 올라 있던 인물로, 수니파 저항세력을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에게는 1천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지만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한 바트당 고위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알-두리는 "점령자(미국)나 그들의 앞잡이(현 이라크 정부)와 대화, 접촉, 화해를 금한다는 지령을 내렸다"고 말했다고 AP는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바트당 인사의 이 같은 발언은 이라크 안정화 작업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는 수니파 온건세력을 압박하기 위해 수니파 저항세력이 벌이는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백혈병에 걸린 것으로 알려진 알-두리는 지난해 11월 사망설이 나돈 이후 그의 행적에 관한 단서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라크 혼미 상황 심화 =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에서는 27일 저녁 저항세력의 박격포 공격으로 원유 수송관이 파괴돼 인근의 베이지 정유공장으로의 원유공급이 전면 중단됐다.

베이지 정유공장에서 생산되는 석유제품은 주로 바그다드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 공급된다.

이라크 북부석유회사 관계자는 "불길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 진화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 F-16 전투기 1대가 이날 수니파 저항세력의 거점인 알-안바르 주에서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사망했다고 알-자지리 방송이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전투기가 비정상적으로 날다가 추락한 뒤 폭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군은 추락 사실을 확인했지만 사고 원인과 조종사의 생존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날 바그다드 도심 거리에서 무장괴한들이 행인들을 향해 총을 난사해 6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으며, 서부 바그다드 지역에서는 납치됐던 주민 2명이 피살체로 발견됐다.

또 이라크 경찰은 미군이 26일 밤 바그다드 교외인 후세이니야에서 민간인 11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으나 미군 측은 이를 부인했다고 APTN 방송이 전했다.

◇美 동맹국들, 이라크 탈출 가속화 =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두고 있는 영국은 내년 말까지 이라크 주둔 병력을 수천 명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데스 브라운 영국 국방장관은 27일 런던의 싱크탱크인 채텀 하우스에서 한 연설에서 "내년 말까지 이라크 주둔 영국군 병력 규모가 수천 명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라크 주둔 영국군 병력은 현재 7천200명 정도이다.

또 이라크에서 880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폴란드는 늦어도 내년 말까지 철수를 완료할 것이라고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27일 밝혔고,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도 이날 이라크 주둔 자국 병력의 철수를 금주 내에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이라크 전쟁 후 약 3천 명의 병력을 이라크 나시리야에 파견했으며, 지난 4월 총선에서 연내 철수를 공약한 프로디 총리의 승리를 계기로 철수가 급속도로 진행돼 현재 60∼70명이 이라크에 남아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