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화폐개혁 논란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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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湜 < 연세대 교수ㆍ경제학 >
최근 여당 일부에서 화폐단위를 변경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당 지도부가 현시점에서 이를 논의하지 않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경제성장과 함께 우리 경제거래 규모나 단위가 과거보다 월등하게 커진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의 화폐단위를 낮추는 이른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은 앞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닌 것이다.
지금 이러한 논란이 여당에서 제기되는 자체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우리 경제에 또 다른 부담을 주게 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현시점에서의 화폐개혁에 대한 논의는 그렇지 않아도 침체된 경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비록 수출은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투자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이 기업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요인보다도 기업이 느끼는 외부 경영환경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기업들은 정치적인 변화에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일관되지 않은 경제정책 기조도 기업을 불안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폐단위를 바꾸는 일종의 화폐개혁은 또 다른 기업경영환경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이는 결국 기업을 더욱 불안하게 해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화폐개혁에 대한 논의는 지금 낮은 금리와 불안정한 정치상황 때문에 외화유출을 더욱 부추길 우려도 있다.
세계 금리는 오르는 추세인데 우리만 금리를 낮추면서 지금 장기채권 수익률은 미국보다도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불법적인 자금유출도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국내 자금의 추가적인 유출이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폐단위의 변경에 대한 논의는 국내 자금의 해외유출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논의는 환율 역시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환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환율이 높아지면서 물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통화단위를 절하하는 화폐개혁은 소수점 이하가 반올림되면서 물가를 높게 만든다.
EU의 경우도 유로로 화폐를 바꾼 후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독일까지도 큰 폭의 물가상승이 있었다.
이미 그동안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 때문에 우리 경제에는 물가상승 압력이 내재돼 있다.
그리고 지금 국제원유가격까지 상승하면서 서민들은 높은 물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화폐개혁 논의는 환율을 높이면서 또한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 외에 화폐개혁 논의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 1960년 경제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화폐개혁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금 정치권이 분배문제와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화폐개혁에 대한 논의는 비록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해도 정치적 의미로까지 확대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경우 그 부작용은 더욱 커지며 경제적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향후 경제가 안정되고 여건이 성숙된 시기에 정치권은 통화당국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해야 한다.
단지 고액권의 발행문제는 자기앞수표의 발행과 처리비용이 금융기관의 비용절감과 연관이 있는 만큼 화폐단위의 변경문제와는 별도로 적당한 시기에 통화당국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수출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침체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증가되고 있는 수출이 투자로 연결되기만 하면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정치권은 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논의보다 기업이 느끼는 경영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기업투자가 늘어나도록 하는데 좀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