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성장 전망이 매우 좋지 않은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내년 이후 회복 가능성도 경쟁 상대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투명하다. 특이한 것은 내년도 전망을 놓고 국내 연구기관들의 예측이 해외 예측기관들보다 훨씬 낮다는 점이다. 이 때까지 보아온 일반적 경우와 정반대의 현상이다. '경기예측 무용론'(2003년 8월8일자 본란)을 주장하는 필자로서는 숫자 자체보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해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일부 언론은 이런 현상을 우리 경제가 빠진 무력감과 패배주의의 표현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연구기관들이 계량화할 수 없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해외 예측기관들보다 더 주목한 결과라고 보고 싶다. '경제가 심각하다''위축된 투자와 소비심리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동북아중심 국가론' 등을 외치면서도 우리의 투자환경에 그 어떤 실질적인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외국인 투자는 급감하고 반대로 우리 산업의 해외 이전은 러시를 이룬다. 이미 청년 실업의 심각성이 경제·사회의 최대 이슈로 등장했다. 신용불량자의 양산과 신용카드사의 부실은 금융시스템의 붕괴,즉 금융위기로 발전될 소지를 안고 있다. 여기에 정치는 경제 발목을 잡고 있고 기업에 대한 정치자금 조사까지 겹쳐 기업의 투자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문제를 포함한 무수한 직·간접 경제현안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또 '한국경제 위기론'이 나온다. 그러나 필자는 경제의 외형적 모습보다 그 배후에 있는 우리 경제 위기의 구조적 본질, 최소한 다음 세 가지에 주목하지 않으면 위기 극복의 길이 보이지 않으리라고 본다. 첫째는 우리 경제의 취약한 국제경쟁력 구조다. 주요 국제 경쟁력 평가기관들은 한국경제의 경쟁력이 IMF위기 이후 2000년을 고비로 이전 수준을 다소 회복하다가 다시 2002년 이후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거나 오히려 하락세로 반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즉 경제위기를 경험하고 각 분야의 구조개선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경제의 외형에 맞는 경쟁력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우리 경제의 최대 문제가 경쟁력이라는데 대한 인식 부족, 그리고 이를 보장해 주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국가지도자들을 비롯한 다수 국민의 확신 결여 및 이로부터 초래되는 국정운영 원리의 불투명성 때문이다. 다음은 경제와 비경제 부문간 국정운영 원리의 일관성 결여다. 노사관계,사회복지,의료,교육 등 경제와 표리 관계에 있는 비경제분야와 경제는 그 운용원리의 기본에 있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가 될 수 없다. 마치 어긋난 두 바퀴를 가진 차를 한 방향으로 몰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적어도 시장경제를 한다면 이런 분야에서도 가능한 한 시장원리에 의하거나 그와 조화되는 방향으로 문제해결 방식이 추구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원리에 의한 경제운용이라는 구호는 허구(虛構)에 불과하다. 셋째는 세계경제의 흐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이 흐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국민의식과 폐쇄적인 경제운용 행태다. 최초로 추진한 칠레와의 FTA조차 6년이나 끌고 있는 현실,WTO체제 성립 10년이 지나고도 대외관계와 최소한으로라도 조화되는 농업정책 방향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 등은 국정운영 시스템의 부재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우리 같이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세계경제의 흐름과 조화되는 경제운용 방식을 도외시하면서 생존과 발전의 조건을 찾을 길은 없다. 지금 외형으로 드러나 있는 모든 경제현안은 이상의 본질적 문제로부터 초래된 결과일 뿐이다. 이런 구조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어떤 대증(對症)적 처방도 곧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이것이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진정한 성격이 아닐까? ihkim@shin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