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비자금 문제가 대선자금의 전면 수사로 비화되고 있다. 불법 대선 자금 공여에 대한 전면 수사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재계에까지도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북핵, 경제 침체, 그리고 재신임 국민 투표 등으로 어려워진 정국에 대선 자금 문제가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부정적이고 비관적 시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치개혁을 앞당겨주고 한국 기업을 정치 자금의 족쇄에서 해방시켜주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엄격하게 말해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사법적 접근은 한국의 민주적 공고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도기적 진통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이번 수사가 정치 자금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정경 유착의 악순환을 단절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사실 지금까지 세 가지 유형의 정치자금 공여와 정경 유착이 있어 왔다. 그 하나는 약탈형이다. 집권 정부 여당이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준 강제적 성격으로 모금하는 것이 이 유형에 속한다. 이 경우 기업은 정치적 보호를 받기 위해 정치 헌금을 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유형은 지대추구형이다. 기업이 특정 이권을 선점하기 위해 정치권 인사들에게 정치자금을 공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추석 떡 값과 같은 관행형 정치자금을 들 수 있다. 대선·총선 때마다 기업이 관행에 따라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이 유형에 속한다. 이 세가지 유형 중 형사처벌의 대상이 돼 왔던 것은 뇌물의 성격을 띠는 지대 추구형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검찰은 지대 추구형 자금뿐만 아니라 그 동안 눈감아 왔던 약탈형·관행형 정치 자금에 대해서도 사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때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정치자금의 불법 공여에 대한 사법적 조치를 취하고 정경 유착의 악순환 고리를 단절하는 정치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자승자박의 우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존 정치자금법은 어떤 면에서 미국의 정치자금법보다 더욱 엄격하다. 지키지도 못할 법을 만들고 이를 위반하는 되풀이를 범해서는 안 된다. 법과 제도를 현실과 관행에 맞게 바꾸어 전 정치인의 범법자화를 방지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정치자금법의 개정 이외에도 입법 로비법의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둘째, 실정법 위반에는 엄격한 징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정법 내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용인돼 오던 사항에 대해 처벌할 경우에는 예고가 있어야 한다. 일말의 예고도 없이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관행을 한칼에 처단한다면 이는 혁명과 다를 바 없다. 셋째, 현 시점에서 정치 자금과 관련해 어느 누구도 떳떳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하고 실정법에 의해 처벌한다면 정당도 기업도 성하기 어렵다. 이들을 부패집단으로 규정하고 처단해 정치권과 재계의 새 틀을 짜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는 생물이다. 한번 허물어지면 재구축하기 쉽지 않다. 이점에 유념하면서 수사는 철저히 하되,사면과 재발 방지의 제도적 장치 구축을 통해 수사의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수사가 어려운 한국 경제를 다시 파국으로 몰아넣는 악재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대가성이 있는 정치자금이면 몰라도 총선 대선 경선 등과 관련된 관행성 정치자금의 경우,사법적 정치적 관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기업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기일전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돈 주고 뺨 맞는 봉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보험 들기식 정치자금의 배분보다는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과 후보에 투명하게 정치자금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번 대선자금 수사를 계기로 한국의 정치 개혁에 가속이 붙고 건전한 정경관계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cimoo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