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고비마다에는 으레 명(名)연설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극적인 역사적 사건의 증언이며 동시에 인간정신의 아름다운 빛이어서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평화를 위해 싸우는 정치가들의 절규,인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투사들의 용기,피압박 민족의 울분을 터뜨리는 혁명가들의 몸부림,애국지사들의 불덩어리 같은 행동 등이 연설 속에 용해돼 그 시대를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1929∼68)의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도 세계 명연설의 하나로 꼽힌다. 1963년 8월28일 노예해방 1백주년을 맞아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는 25만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이 자리에서 킹 목사는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인권운동의 기폭제가 되는 열정적인 웅변을 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버스안에는 흑·백의 좌석이 구분돼 있었고 공중화장실과 식당을 백인과 함께 이용할 수 없는 주가 태반이었다. 킹 목사는 이 연설에서 "나는 나의 어린 네 아이들이 어느 날 그들의 피부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격에 의해 가치판단을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살 것 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며 "이 순간의 고난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 연설을 계기로 흑인인권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킹 목사의 명연설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미국 곳곳에서 다채롭게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주말에는 킹 목사가 연설했던 링컨 기념관 화강암 계단위에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라는 각판을 설치했다. 이날 행사에는 63년에 외쳤던 '일자리와 자유'라는 구호가 등장해 킹 목사의 '꿈'이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희망이 만든 것이다"고 설파했던 킹 목사의 소신은 아직도 흑인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때리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절망은 있게 마련인데,지도자가 던지는 한 마디에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성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